매일신문

역사속의 한자-'해상왕' 장보고

張保皐(장보고)는 新羅人(신라인)이라. 如唐(여당)하여 爲武寧軍小將(위무녕군소장)한대 *騎而用*槍(기이용창)에 無能敵者(무능적자)라 後(후)에 保皐還國(보고환국)하여 謁大王曰(알대왕왈) "遍中國(편중국)컨대 以吾人爲奴婢(이오인위노비)하니 願得*鎭淸海(원득진청해)하여 使賊不得*掠人西去(사적부득략인서거)니이다." 淸海(청해)는 新羅海路之要(신라해로지요)니 今謂之莞島(금위지완도)라. 大王(대왕)이 與保皐萬人(여보고만인)하니 此後(차후)에 海上無賣鄕人者(해상무매향인자)하니라 -삼국사기(三國史記)

장보고는 신라 사람이다. 당나라에 가서 무령군의 소장이 되었는데, 말 타고 창을 쓰는데 능히 대적할 만한 사람이 없었다. 후에 장보고가 본국으로 돌아와 대왕을 뵙고 말하기를, "중국을 두루 돌아보니, 우리나라 사람들을 노비로 삼고 있습니다. 원하옵건대 청해를 진압하여 도적으로 하여금 사람을 붙잡아 서쪽으로 가지 못하게 하겠습니다." 청해는 신라 바닷길의 요충지이니, 지금은 완도라고 이른다. 대왕이 보고에게 만 명의 군사를 주니 이후에 해상에서 우리나라 사람들을 파는 자들이 없었다.

이 글은 9세기 중반 뛰어난 *航海術(항해술)과 *造船(조선) 능력을 가지고 한반도를 중심으로 한 동아시아 해상권을 장악, 국제 무역의 질서를 바로잡은 해상왕 장보고의 활약상에 관한 역사적 기록이다.

당시 신라의 서남해안 일대 해적들은 육지에 상륙하여 민가를 습격하고 신라인들을 마구 잡아 중국에 노예로 파는 등 온갖 *掠奪(약탈)을 *恣行(자행)하였다. 이에 장보고는 신라로 귀국하여, 완도 지역에 해상 군사기지인 청해진(淸海鎭)을 설치하였다. 군사 1만 명을 거느리고 이곳을 중심을 한 서남해안의 해상권을 장악, 당시 성행하던 당나라 해적을 소탕하는 한편 동방무역의 패권을 잡았다. 이로 말미암아 청해진은 중계무역항으로서 해로의 *要衝地(요충지)가 되었다.

청해진의 설치는 동아시아에서 해상 교통 발전과 국제 무역 및 교류에도 상당히 기여했다. 특히 민간의 경제 논리에 의한 무역 질서가 *胎動(태동)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 계기의 선도적 역할을 한 사람들이 신라 상인들이었으며 그 정점에 있던 사람이 장보고이다. 그리고 그곳이 청해진이다.

이후 막강한 군사력과 부를 보유한 장보고의 세력 확대를 우려한 중앙 귀족들은 장보고의 부하인 염장(閻長)을 통해 장보고를 암살했다. 장보고 사후 청해진은 염장에 의해 한동안 관장되다가 서기 851년 2월에 완전 해체되었으며 장보고의 부하들은 중국과 일본으로 도피하고 청해진 주민들은 지금의 전라북도 김제시인 '벽골제'로 강제 이주되면서 찬란했던 장보고의 해상왕국은 막을 내리게 되었다. 그러나 장보고 시대의 조선술과 항해술 및 해양 경영 능력은 후손들에 의해 맥을 유지하여 임진왜란 때 일본의 침략을 물리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이는 이순신 장군이 남긴 '서남해안의 세력이 없었던들 나라도 없었을 것이다(若無湖南 是無國家)'라는 말에 잘 나타나 있다.

자료제공 : 장원교육 한자연구팀

◇ 한자풀이

*騎(기): 말타다 *槍(창): 창

*鎭(진): 진압하다 *掠(략): 노략질하다

*航海術(배 항, 바다 해, 기술 술): 항해 중에 배의 위치를 확인하고 나아가는 길을 파악하는 등 항해에 필요한 기술

*造船(만들 조, 배 선): 배를 건조함

*掠奪(노략질할 략, 뺏을 탈): 폭력으로 빼앗음

*恣行(방자할 자, 행할 행): 방자하게 행동함, 또는 그 행동

*要衝地(구할 요, 부딪힐 충, 땅 지): 지세가 군사적으로 중요한 곳

*胎動(아이밸 태, 움직일 동): 1. 모태 안에서 태아가 움직임 2. 어떤 일이 일어날 기운이 싹틈

*枯渴(마를 고, 목마를 갈): 1. 물이 말라서 없어짐 2. 물자나 자금이 달림 3. 인정이나 정서 따위가 없어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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