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급 학교 졸업식이 열린 지난주에는 모처럼 기억 속에 가물거리던 옛 노래를 웅얼거릴 수 있었다. '선생님 저희들은 물러갑니다. 부지런히 더 배우고 얼른 자라서…' 학교를 마친지 오래인 이들에게 졸업의 노래는 부를 때마다 가슴 밑바닥이 아련해지는 추억의 한 페이지다.
하지만 요즘 세대들에게 졸업은 별 감각 없는 통과의례 정도로 보인다. 졸업 시즌을 앞두고 인터넷에선 '부지런히 얼른 자'라는 허무송이 유행하더니, 신문과 방송에선 졸업 특수를 누리려는 업체들의 상혼만 난무했다.
졸업식장의 분위기도 갈수록 삭막해지고 있다. 내용이 뻔한 송사와 답사에 눈물을 글썽이다가 졸업의 노래를 부르며 끝내 울음바다가 되고, 다림질로 빤질빤질해진 교복에 밀가루를 뿌리고 계란을 던지며 졸업의 기쁨과 아쉬움을 나누던 모습은 낡은 사진첩에나 나올 법한 일이 됐다.
강당에라도 갈 수 있으면 그나마 잠시라도 충실할 수 있겠지만, 날씨가 좋지 않다거나 강당이 비좁다고 교실에서 TV로 졸업식을 지켜보는 학생들이 졸업식 식순에 관심을 둘 리 없다. 옆의 친구들과 킥킥거리며 디지털 카메라나 휴대전화로 학교에서의 마지막 모습을 남기는 데만 열심일 뿐이었다. 빨리 끝나 가족들에게 받은 선물과 용돈을 들고 끼리끼리 자신들만의 놀이터로 가는 일에만 관심이었다.
이런 모습을 보고 "요즘 애들이란…" 하며 혀를 차기는 무언가 모자란다. 무엇이 학생들에게 졸업이라는 마침표마저도 무감각하게 만드는 것일까 한번 쯤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졸업은 지나온 시간들을 정리하고 다가올 시간들을 생각하게 만드는 분기점이다. 과거의 졸업은 지난 학교 생활에서의 온갖 부대낌을 떠오르게 하고, 상급 학교에 대한 기대에 부풀게 만들었다. 이에 비하면 요즘 졸업은 부대낌의 자잘한 기억들이나 진학에 대한 기대보다 닥쳐올 날들에 대한 걱정을 먼저 떠오르게 만든다.
고교 선행반 수업을 1월부터 들은 중3생들에게 2월의 졸업식이 진지할 리 없다. 지긋지긋한 고3의 터널을 빠져나오고 보니 취업이라는 더욱 긴 터널이 기다리고 있는 고3생들에게 고교 졸업의 감동이 생길 리 없다. 그저 허무와 유희로 빨리 지나쳐야 할 이벤트에 불과해진다.
그래도 강당 한 구석에서, 떠나는 아이들의 뒷모습을 보는 교실 문에서 눈물을 감추는 교사들을 본 건 다행스런 일이었다. 졸업식 날 저녁 선술집에서 동료들과 나눈 소주잔으로 씁쓸함을 털어낸 교사들이 이튿날부터 분주하게 새 학기를 준비하는 모습이 눈에 들어온 것도 가슴을 신선하게 했다. 지금 같은 졸업식 풍경이 앞으로도 내내 계속되진 않을 것이란 생각이 드는 것은 그들의 존재 덕분이리라.
김재경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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