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애를 보다가 짜증이 나면 거침없이 고함도 치고 욕도 하곤 합니다. 그러면 아내는 아이의 인성을 생각해 그러지 말라고 다그치지요. 낮고 고운 말씨와 스킨십을 해 주라면서 엄마인 자신과 같이 애들을 대하라고 합니다.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저는 고려가요 사모곡의 구절을 떠올리게 됩니다. 과연 '어머니가 애를 대하듯 아버지도 그렇게 해야 하는가' 라는 의문이 들기 때문입니다.
사모곡 구절을 보면 아버지의 사랑은 호미이고 어머니의 사랑은 낫에 비유하지 않습니까. 호미는 호미로서 있어야지 만일 호미 날이 낫 날과 같다면 호미는 밭을 일구고 김을 매는 제 역할을 다하지 못할 것입니다.
아버지는 동네 어귀에 서 있는 큰 느티나무나 보컬의 베이스처럼 그저 무던하게 있으면서 가족에게 무한한 안정감을 주고 가풍을 이끌고 조율하는 역할만 하면 되지 당장 가려운 곳을 긁는 효자손은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아내는 그런 효자손 역할까지 하라니 불만입니다.
저 또한 아버지에게 가지는 감사와 사랑의 기억은 매일 엄마처럼 밥 챙겨주고 공부하라 술 먹지 말고 일찍 귀가하라는 그런 모습에서 비롯된 것은 분명 아닙니다. 사실 제 아버지는 형제 많은 집에서 늦둥이로 태어나 큰어머니 손에서 거의 키워져 부끄러움이 많으시고 그래서 말수도 많지 않으신 분이었습니다. 그런 성품 탓에 제가 크면서도 아버지로부터 맞거나 꾸중을 들은 기억도 없습니다. 다 성장하고도 오랫동안 고시낭인으로 생활할 때도 아버지는 저에게 공부 집어치우고 다른 길로 가라, 공부하긴 하는 거냐고 채근하신 일도 없었습니다. 다만 하신 말씀이라고는 "요즘 어떻노" 라는 말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런 짧은 물음에도 당시 저는 몸둘 바를 모르고 돌아서서 열심히 공부해야겠다고 다짐하곤 했지요.
아버지와 아들인 제가 많은 대화를 나누진 않았지만, 제가 아버지를 존경하고 사랑한 이유는 아버지는 가족을 위해서 말이 아닌 부지런히 애쓰시는 모습을 항상 보여주셨기 때문입니다.
부모가 되기 힘들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당장 애들의 투정을 받아주고 가렵고 눅눅한 곳을 긁어주고 갈아주는 것이 어려운 것이 아니라 애들에게 항상 성실하고 정직한 태도로 세상을 살아가는 아버지로 비쳐지기가 어렵다고 생각하기 때문이 아닐까요. 아버지! 고맙습니다. 사랑합니다. 편히 쉬십시오.
변호사 jdb208@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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