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팀은 지난 주(14~19일) 경북 농촌 마을의 코시안들을 취재했다. 그 결과 영주, 봉화, 예천, 문경, 상주 등 경북 5개 시·군의 15개 농촌 마을 모두 코시안들이 살고 있었다. 한국인 엄마와 아빠 사이에 태어난 아이보다는 코시안이 더 많은 마을이 적잖았고, 아이라곤 코시안뿐인 마을도 많았다.
◇떠나는 농촌에 국제결혼 2세가 주인
지난달 31일 생후 100일을 맞은 혁영군. 아빠 권오복씨(예천군 기곡리)와 엄마 응우웬 티 만(21·베트남)씨는 혁영이가 태어나던 순간을 결코 잊을 수 없다고 했다. 권씨에겐 43년 만에 얻은 첫 아들이자 부부가 사는 마을에서도 18년 만에 태어난 아기였다. 권씨는 "마흔 줄에 아들을 얻은 기쁨을, 노인들만 있는 마을에 아기 울음소리를 준 감동은 겪어보지 않은 사람들은 모를 것"이라며 "하지만 아이가 마을에서 혼자 커 갈 것을 생각하니 벌써 걱정이 앞선다"고 말했다.
부인 만씨는 예천군엔 임신 중인 베트남 친구만 4명이라고 했다. 동탑, 겐장, 건터, 타이넨 등 호치민시 인근에 살았던 또래들이 10여년 넘게 아기 울음 소리가 없는 농촌 마을에 시집을 왔다고 전했다.
봉화군 상운면 가곡 1리 천고개 마을. 20여 가구가 3개 부락에 흩어져 있다. 아이라곤 10년 전 마을에 시집 온 태국 출신의 바우패스(40·여)씨 아들 3명이 사실상 유일하다. 도로 건너편 본 마을에 아이가 몇 있지만 바우패스씨 집은 본 마을과는 족히 2km나 떨어진 곳의 '나홀로' 집이기 때문. 그래서 초등학교에 다니는 큰 아들과 둘째, 올해 네살인 막내는 서로를 친구삼아 지내고 있었다. 아버지 정모(46)씨는 "우리가 마을에서 가장 젊다"며 "앞으로 마을에서 태어나는 아이는 없을 것"이라고 했다.
문경시 동로면 간송리 '감자골'. 15가구가 전부인 이 마을 역시 아이들이라곤 필리핀 출신의 로엔나(36)씨 자녀 3명과 이웃 중국인 친구의 자녀 3명이 전부. 로엔나씨의 두 딸은 집에서 20km나 떨어진 산북면의 어린이 집에 다니고 있고, 이웃의 중국인 자녀 3명도 초등학교와 유치원 등에 다니고 있다. 이들 2세는 마을에 또래가 없어 방과 후 매일같이 함께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지난 17일 예천군 풍양면사무소. 마을에서 국제결혼을 한 부부 5쌍 모두가 모였다. 이중 베트남 출신만 4명이다. 베트남 출신 중 3명은 결혼한 지 석달도 안된 새댁들. 풍신리 직신마을의 이명건(46)씨는 2002년 베트남 출신의 부인과 결혼, 두살된 아들을 두고 있고, 둘째도 곧 태어난다. 이씨 역시 마을에서 가장 젊고, 아들도 마을에서 유일한 아이다. 갓 시집온 베트남 부인들에게서 태어날 아이들 모두 마을에서 '귀한 손'이 된다.
경북 곳곳의 농촌 마을에서 국제결혼 2세들이 '주인'으로 커가고 있었다. 지난 2년 동안 도내 국제결혼 이주여성은 모두 532명. 대다수는 농촌마을마다 한두 명 남은 노총각들에게 시집왔다. 또 이들 중 거의가 첫아이를 낳았거나 아이를 임신하고 있다.
예천읍에서 국제결혼 부부 쉼터를 운영하고 있는 권혁대씨는 "국제결혼은 농촌사회의 낯설지 않은 문화로 자리잡았다"며 "국제결혼 2세들이 무너져 가는 농촌 마을을 책임져야 할 날도 멀지 않았다"고 했다.
◇왜 넘쳐나나
바로 농촌 노총각 결혼 문제 때문.
예천군은 올해부터 농촌 노총각 가정 이루기 사업을 실시, 노총각 18명에게 1인당 600만 원을 지원한다. 군내 노총각과 동남아 미혼여성 간의 만남에서 결혼, 정착까지 지원할 계획이다. 농촌 노총각의 국제 결혼을 추진하는 타 시·군도 늘고 있다.
문경시 여성복지담당 이용복씨는 "농촌 노총각들이 가정을 이룰 수 있는 기회는 사실상 국제결혼 뿐이며 국제결혼이 고향을 등지고 도시로 떠나는 농촌 젊은이들을 막는 유일한 대안이 되고 있는 실정"이라고 밝혔다.
1990년대 이후 한국 색시들은, 특히 농촌에 살고 있는 이웃 처녀들까지도 농촌 총각들을 무조건 기피했다. 또 결혼 전제 조건으로 농촌을 떠나 도시에서 단 둘이 살 것을 '강요'했다. 이 과정에서 농촌의 젊은이 상당수는 결혼 조건을 맞추기 위해 고향을 등져야 했고, 결국 농촌에는 노부모를 모시고 고향 땅을 지킬 수밖에 없는 노총각 한두 명만 남게 됐다. 이들에겐 한국 색시, 이웃의 농촌처녀들은 '그림의 떡'이었고, 외국인 부인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것.
취재 기간 둘러본 농촌 마을 경우 한국 부인을 둔 30, 40대 농민은 손에 꼽을 정도였으며 외국인 부인이 더 많아 마을 노인들은 '인근 마을 누구 집에 외국인 며느리가 있다'는 것을 훤히 꿰고 있었다. 봉화군에서 지난 10년간 외국인 관련 업무를 한 김순교씨는 "농촌 마을마다 외국인 부인 모시기 경쟁이 갈수록 치열해질 정도"라고 했다.
국제결혼은 90년대까지는 중국인(조선족)과의 결혼, 종교단체를 통한 만남 등이 주류였다. 취재 기간 만난 외국인 부인 중엔 종교를 통한 결혼이 많았다. 하지만 한국인 남편 중 적잖은 수는 단지 결혼을 하기 위해 '종교'에 가입했다. 실제 결혼 후 농사일 등을 핑계로 교회에 다니지 않는 사례도 있었다.
동남아 출신의 부인을 둔 봉화의 40대 농부는 "결혼을 하기 위해 무엇을 못하겠냐"며 "주변에 일단 하고 보자식의 결혼이 많았다"고 털어놨다. 2000년대 들어선 결혼 알선업체를 통한 동남아 여성과의 결혼이 급증하고 있고, 이미 결혼한 외국인 아내들이 고향의 친구나 친척을 한국 남편의 지인, 친척, 이웃들에게 소개해 결혼을 성사시키는 사례도 크게 늘고 있다.
◇초스피드 결혼도 한 몫
취재 현장에서 만난 결혼업체 관계자들은 농촌 노총각이 동남아 처녀들과 결혼하는데 걸리는 기간은 최대 10일을 넘지 않는다고 했다. 농촌 노총각과 동남아 처녀들은 서로를 전혀 이해하지 못한 채 일단 결혼식부터 올리고 본다는 것. 이 때문에 결혼한 지 1년이 넘어도 의사소통조차 불가능한 국제결혼 부부가 상당수며 동남아 엄마들은 2세를 낳은 후에도 우리말과 우리문화에 서툰 경우가 허다하다.
현재 국제결혼 방식은 사진만 보고 바로 식을 올릴 수 있었던 예전과는 많이 다르다. 현재 동남아 각국은 결혼 당사자가 반드시 일정기간 현지에 체류하도록 법을 개정했다. 체류기간이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더 많은 돈이 소요되고, 최근엔 국제결혼업체들의 출혈경쟁까지 가세해 점점 더 결혼 기간이 짧아지고 있는 실정이다.
지난 17일 예천군의 한 마을에서 만난 이모(45)씨는 청각 장애인이다. 이씨는 1년 전 지체장애인인 조선족 출신의 아내를 맞아 노총각의 외로움을 면했다. 하지만 결혼생활은 불과 4개월뿐, 아내는 농촌 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고 중국으로 돌아가버렸다. 이후 아들이 너무나 불쌍했던 어머니는 아들의 색시를 찾아 나선 끝에 석달 전 동남아 출신의 며느리를 다시 맞았다.
기획탐사팀 이종규·이상준기자 봉화 마경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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