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하는 노인'이 늘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만 65세 이상 노인 취업자는 124만 명으로 전년보다 8.9% 늘어나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 '나이는 숫자일 뿐'이라고 비웃으며 '일'을 통해 건강하고 활기찬 노년을 보내는 두 어르신을 만나봤다.
◇대구 최고령 택시기사 76세 김덕윤씨
"나이가 들수록 움직여야지 오래 살어. 양로원이나 노인정에 있는 50대들 보면 참 한심하다는 생각이 가끔 들어. 일하려고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일자리는 있는데…."
깔끔하게 염색한 머리에 밝은 미소로 기자를 맞은 김덕윤(76·신성운수)할아버지. 1930년생이라는 말이 도저히 믿어지지 않았다. 게다가 친절하게 사탕을 건네며 "애들이 타면 항상 사탕을 줘. 염색한 것도 조금이라도 손님들에게 젊게 보이려는 서비스지"라며 웃음을 띨 때는 치밀한 기업가 그 자체였다.
택시운전 6년째. 젊은 시절 서부시장에서 어묵공장을 경영했었다. 하지만 93년 사업이 실패하면서 부인이 경영하는 분식점을 돕다가 부인의 건강이 나빠지자 생계를 위해 99년 운전대를 잡았다. 그러나 단지 돈 때문에 일을 시작한 것은 아니다.
"택시운전을 시작한 이유는 많은 사람을 만날 수 있기 때문이야. 내 차에 타는 순간 모든 사람들은 내 집에 온 손님이 돼. 손님들이 가끔 나이든 사람이 일하는 모습이 보기 좋다는 말을 들을 때마다 참 기뻐."
'춘추장학회'에서 일을 하는 등 사회사업도 정력적으로 하고 있다. "24년째 장학회 부회장을 맡고 있는데 형편이 어려워도 열심히 배우려고 하는 소년소녀가장들을 보면 스스로를 되돌아보는 기회가 돼"라고 했다.
회사에서도 오히려 젊은 사람들보다 나이든 사람을 더 좋아한다고 전했다. 젊은 사람보다 믿음직스럽고 말썽도 부리지 않아 회사에서도 인정을 받고 있다는 것. 젊은 사람들에게 모범이 되려고 열심히 일하는 것도 나이든 사람들이라고 했다.
하루 근무시간은 10∼12시간 정도. 언제까지 일을 계속 할 거냐는 물음에 "언제 운전대를 놓을 거냐고? 그건 나도 모르지. 건강이 허락할 때까지는 계속 일을 해야지"라고 대답했다.
◇보험설계사 64세 조화자씨
"기자양반! 할머니라니 섭섭하네. 이래봬도 아직 할머니라고 부르는 사람은 별로 없수다."
대구 중구 삼성금융프라자 로비에서 만난 조화자(64·삼성생명 동대구영업소 팀장) 할머니는 세 살짜리 손자를 둔 '어엿한' 할머니인데도 할머니이기를 거부한다. 곱게 단장한 모습에 20년 보험설계사 생활로 많은 사람들을 만나본 솜씨답게 뛰어난 유머감각으로 이야기를 주도했다.
하루 단 10분도 쉴 시간이 없다고 한다. 밖에서는 보험설계사 일로 바쁘고 집에 들어오면 집안 일에다 가끔씩 손자도 돌봐야 한다. 엄마이자 맏며느리 역할까지 하고 있다. 말 그대로 '슈퍼 할머니'인 셈. 그래서 하루 수면시간 5시간을 빼고는 항상 움직인다.
바쁜 생활에다 연세 때문에 직장을 다니기 힘들지 않으시냐고 여쭈었더니 "아직은 끄떡없어요. 얼마 전 김치도 40포기나 담갔는데요 뭐~. 오히려 사람들 만나고 열심히 돌아다니니 또래 친구보다 더 건강한 것 같아요"라는 답이 돌아왔다.
하루에 만나는 고객은 5명 안팍. 열심히 돌아다니며 고객관리를 하는 덕분에 예전보다는 수입이 좋지 않지만 그래도 월 평균 400만∼500만 원 가까운 수입을 올린다고 한다.
물론 경제적 어려움 때문에 일을 하는 것은 아니다. 남편이 사업을 하고 있고 자식들도 장성해 직장에 다니고 있어 굳이 '일'을 할 필요가 없다. 그런데도 '일욕심'은 아무도 못 말린다.
"돈 때문에 일할 필요는 없어요. 하지만 늙은 나이에도 일을 하고 있으면 살아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게다가 경제적 여유가 있으니까 또래 친구들처럼 자식들에게 용돈을 받지 않아도 되고 1년에 한 번씩은 꼭 가족여행도 떠나고 친구들에게 밥 한 번 사줄 수 있어 행복한 거죠."
"항상 부지런히 일하면 남에게 의지하지 않고 멋진 인생을 살 수 있다"며 "자식들에게 열심히 살아가는 엄마의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서라도 힘닿는 데까지 일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재교기자 ilmare@imaeil.com
사진설명 : 대구 최고령 택시기사인 76세의 김덕윤씨(위)와 64세의 보험설계사 조화자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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