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남두홍씨 가족의 외국인 홈스테이

집이 좁아서, 침대도 없는데, 영어도 잘 못해, 음식은 어떻게 하나…. 일반인들이 외국인 홈스테이를 생각하면 먼저 떠올리게 되는 어려움들이다. 2002년 월드컵 이후 대구를 방문하는 외국인들에게 홈스테이를 제공하는 집들이 조금씩 늘고 있지만, 일반 가정에서 선뜻 홈스테이를 시작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회사원 남두홍(45), 김미숙(40)씨 부부는 남들이 어렵게만 생각하는 외국인 홈스테이가 오히려 즐겁기만 하다고 입을 모은다. 지난 2002년 월드컵 때 영국인을 13일간 집에서 묵게 했던 이들 부부는 지금까지 독일'필리핀'미국인 등 10여 명에게 홈스테이를 제공했다. 집에서 묵지는 않았지만 연락을 주고 받는 외국인은 20여 명이나 된다. 평범한 가정에서 외국인 홈스테이를 꾸준히 할 수 있는 비결은 무엇일까. 마침 필리핀인이 가정에 묵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대구 시지동 집을 찾아가 보았다.

♣소박하게 사는 모습 그대로 보여줘요

방이 3개인 24평 아파트. 분양받아 입주한 아파트로 산 지 꽤 됐다. 어느 정도 집이 클 것이라는 기자의 기대는 처음부터 무너졌다.

"안방·애들 방·책방, 이렇게 작은 방이 3개 있는데 외국인이 오면 책방에서 잡니다. 침대가 없다고 처음부터 말하지만 외국인들은 침대 없이 자기도 한다며 불편해 하지 않더군요."

남씨는 외국인들이 편한 걸 생각한다면 시설 좋은 호텔로 가지 굳이 잠자리가 불편한 가정에서 민박할 생각을 하겠느냐면서 한국 가정의 문화를 접하기 위해 불편해도 민박을 선택하는 것 같다고 했다.

◇ 한국문화 접하려 '불편' 선택

지난 10일부터 17일까지 이 집에서 묵은 필리핀인은 오스카 투린건(40) 필리핀 세인트 폴 대학교 부학장. 2003년 하계 유니버시아드대회 관람 겸 경북대 세미나 참석차 대구에 와서 1주일간 이 가정에 머물렀다. "대구시청에서 월드컵 때 외국인 민박한 가정은 유니버시아드대회 때는 안 된다고 해서 신청을 하면서도 별 기대를 안 했어요. 그런데 갑자기 투린건씨가 방학 때 몇 군데 가정에 연락해도 민박이 어려워 저희 집으로 오시게 됐죠."

'백조의 호수' 발레 공연을 보려던 계획도 취소하고 바로 공항에 마중 나가고 집에서 저녁 식사 준비한다고 정신이 없었다는 김씨. 간단한 영어는 해도 영어학원에 다닌다는 그녀는 남편이 직장에 나가고 나면 외국인과 하루 종일 시간을 같이 보낸다.

"밥하고 된장국'미역국'콩나물국'소고깃국…. 주부들이 평소에 해먹는 식으로 우리 음식을 내놓아도 외국인들은 뭐든 잘 먹어요. 김치도 잘 먹고 매운 음식도 'No problem'(문제없다)이라고 하지요. 지난해 묵었던 독일인은 배가 불룩하게 나와 살찐 분이었는데 상추 위에 소고기, 쌈 된장, 김치까지 얹어 얼마나 맛있게 드시던지 놀랐어요."

김씨는 외국인들에게 대구와 주변 지역을 관광시켜 줄 때도 점심때 먹을 김밥을 싸서 나간다고 한다. 학교에 다니는 두 아들을 현장체험학습으로 수업을 대신하게 신청하고 아이들, 외국인과 함께 집을 나서는 김씨. 주말에는 남편이 승용차 운전을 해주지만 평일에는 버스 타고 지하철 타고 걸어다니면서 구경을 한단다.

"대구에서는 대구박물관'월드컵경기장'서문시장'팔공산'약령시'비슬산 등을 빼놓지 않고 구경시켜 줍니다. 또 합천 해인사'안동 하회마을'청도 운문사에도 가지요. 경주에는 투어 버스가 있어 좋은데 대구에서 시외버스를 타고 가서 내리면 바로 투어 버스를 탈 수 있어요."

외국인들이 버스'지하철 등을 타고 여행 다니는 것을 불편해 하지 않느냐는 물음에 그녀는 "오히려 한국 사람들이 생활하는 모습을 가까이서 볼 수 있어 외국인들도 좋아하는 것 같다"고 했다.

♣민간 교류 통해 아이들 영어 실력 덤으로 늘어요

이들 부부는 친근하게 정을 내는 외국인들에게 적잖이 놀랐다고 말한다. 지난해 월악산에 놀러갔다가 우연히 만난 독일인들은 "놀러 오라"고 인사치레로 한 말에 정말로 대구를 찾아 와 자신의 집에서 묵고 갔다는 것. 올 여름 다시 대구를 찾을 예정인 독일인들은 2006년 독일 월드컵을 보러 꼭 오라고 이들 가족을 초청했다고 한다.

◇ 애들 외국문화 체험은 '덤'

"이번에 필리핀에서 오신 투린건 교수는 방학 때마다 아이들을 초청해 세 번이나 다녀 왔어요."

현우(13'오성중 2년), 관우(11'고산초교 5년) 두 아들은 투린건 교수의 알선으로 필리핀 마닐라에서 비행기로 1시간 거리인 투게가라오시 세인트 폴 대학교 부속 학교에서 필리핀 학생들과 함께 지금까지 16주를 보낸 셈이다.

"방학때 부모들이 아이들 어학 연수를 많이 보내는데 현지 학생들은 접해볼 기회도 없이 그저 다녀왔다는데 의미를 두는 경우가 많잖아요. 하지만 현우'관우는 현지 학교에서 필리핀 아이들과 함께 수업을 받고 같이 놀면서 생활하니 영어를 빨리 받아들이는 것 같아요."

김씨는 초등학교 6학년때까지 영어학원을 다닌 적이 없던 현우가 필리핀을 세 번 다녀온 후 외국인의 얘기를 통역해줄 정도로 영어 듣기와 말하기가 놀랄 정도로 많이 늘었다고 했다. 처음 필리핀을 갔을 때 영어를 하나도 못하던 관우도 두 번째 다녀와서는 듣기가 어느 정도 되더니 이번에는 듣고 말하기까지 조금씩 되는 것 같다고 한다.

"영어학원에 보내는 돈 아껴서 이렇게 아이들을 외국에 보내는 것이 더 효과적인 것 같아요. 그런데 현우가 1년만 필리핀에서 공부하고 오면 안 되느냐고 졸라서 고민 중입니다."

지난해 9월 지넷 에드먼즈 미 제19 전구지원사령관의 이임식에도 대구 가정 대표로 참석한 이들 가족은 "외국인 홈스테이를 통해 세계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외국에 나가지 않고도 직접 체험할 수 있는 것이 좋은 것 같다"며 "너무 어려워 하지 말고 외국인 홈스테이를 시작해 볼 것"을 권했다.

♣외국인 홈스테이 어떻게 신청하나

대구시는 2002년 월드컵과 유니버시아드대회 등을 통해 홈스테이의 중요성을 확인하고 연중 상시 홈스테이 프로그램을 도입, 외국인들을 불러들이기 위해 홈스테이 전용 홈페이지(http://homestay.daegu.go.kr)를 운영하고 있다. 홈페이지 첫 화면에서 '홈스테이 대구'를 신청하면 향후 외국인 홈스테이 기회가 있을 때 연락이 간다. 이 홈페이지에서는 외국인 홈스테이에 대한 여러 가지 궁금증에 대한 해답, 유용한 영문 표현 등도 안내하고 있다.

김영수기자 stella@imaeil.com

♣남두홍 김미숙씨 부부가 추천하는 외국인 여행지

대구박물관=대구의 모든 역사가 다 모여 있는 곳입니다. 대구를 알리기에 좋은 곳이지요. 역사체험과 전통놀이도 할 수 있습니다.(팽이치기'투호놀이'제기 차기 등)

서문시장=수많은 섬유 제품과 큰 시장으로서의 많은 상품과 풍부한 먹을거리, 대구의 인심까지도 엿볼 수 있는 곳입니다.

팔공산=대구 근교의 산으로 빼어난 자연경관과 불교문화 유적인 동화사와 갓바위를 돌아볼 수 있는 곳입니다.

약령시=우리 조상의 얼과 지혜가 살아 숨 쉬는 곳으로 역사와 전통을 가진 한약의 성지입니다.

비슬산=겨울의 이색 체험으로 비슬산의 얼음동산이 좋았습니다.

경주여행=천년고도 찬란한 신라문화와 역사를 만날 수 있는 곳입니다.

안동여행=조선시대의 양반 가문과 우리 조상의 삶과 지혜를 소개할 수 있는 곳입니다.

합천 해인사=고려 시대 불교문화의 정수를 보여 줄 수 있는 팔만대장경과 뛰어난 자연경관을 볼 수 있습니다.

청도 운문사=잘 관리된 소나무 숲과 비구니들의 청아한 독경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곳입니다. 물 맑고 골 깊은 곳이며 청정 1급수로 대구 시민의 식수원으로 사용되는 운문 댐을 소개할 수 있습니다.사진: 홈스테이를 너무 어렵게 생각할 것 없이 평소 사는 모습 그대로 외국인에게 보여주면 된다고 말하는 남두홍씨 가족. 지난해와 올 2월 이 집에서 묵은 오스카 투린건 필리핀 교수가 저녁식사 후 아이들과 게임을 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이채근기자 mincho@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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