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8년 전이다. 옛 발해의 해상항로를 복원하겠다는 큰 꿈을 품고 1997년 12월 31일 뗏목을 타고 떠났던 네 젊은이가 돌아오지 못했던 일이. 발해 건국 1천300년을 맞아 발해와 한반도'일본을 잇는 바닷길을 찾아 나섰던 장철수'이덕영'이용호'임현규 네 젊은이는 옛방식 대로 뗏목에 몸을 싣고 거친 뱃길을 헤쳐나가던 중 그만 폭풍에 휘말리고 말았다.
◇ '발해 1300호' 뗏목의 못다한 꿈을 이루고자 네 명의 젊은이가 지난 19일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두번째 발해 탐사 뗏목을 띄웠다. 폭 4.5m, 길이 11m, 무게 11t의 뗏목. 조난 경보 발신기와 위성통신장비, 구명복 정도만 갖춰져 있을 뿐 하늘에 운명을 맡겨야만 했다. 강풍이 몰아치는 바다로 나섰을 때 심경이 어떠했을까. 죽음도 불사하는 투혼 만이 그들을 지탱케 했을 것이다.
◇ 그러나 하늘은 이번에도 뱃길을 열어주지 않았다. 출항 10시간 후부터 교신이 끊겨 온 국민을 애타게 했던 탐사대원들이 오늘 아침 독도 근처에서 발견됐다. 큰 부상을 입지는 않았다니 다행이다. 앞으로도 기회는 있다. 우리 젊은이들의 뜨거운 역사의식을 확인한 것이 큰 소득이다.
◇ 왜 그들은 죽음도 마다하며 '발해'에 매달렸을까. 1차 탐사대의 고(故) 장철수 대장은 대학시절 수업시간에 본 세계지도 10장 중 8장이 독도를 다케시마(竹島)로, 동해를 일본해로 표기한 것에 충격 받아 "구겨진 역사를 바로 펴겠다"고 결심했다. 한민족이 동아시아를 호령한 고구려'발해의 후손임을 당당히 주장해야 한다는 신념으로 뗏목탐사를 계획했다. 자신의 집을 팔아 경비에 충당할 정도로 준비에 심혈을 기울였다.
◇ 장 대장의 시신은 오른 쪽 다리 한쪽만 발견됐다. 장례식에 참석한 블라디보스토크 극동대학 측은 "항해를 마치지는 못했지만 발해인들이 연해주에서 한반도 남부와 일본을 왕래했음을 증명했다"며 교수회의 만장일치로 그에게 해양학 박사학위를 수여했다. 고구려사 왜곡의 동북공정(東北工程)을 추진하는 중국은 발해도 당(唐)의 지방정권이라고 억지주장을 하고 있다. 실패했지만 뗏목탐사대 여덟 젊은이들의 뜨거운 애국정신에 머리가 수그려지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일본의 독도 망상, 중국의 역사 왜곡이 계속되는 한 발해의 꿈은 계속될 것이다.
전경옥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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