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지막한 언덕에 옹기종기 모인 초가집과 기와집, 이국적인 선교사 사택, 들쭉날쭉한 나무 전신주, 느릿느릿 달리던 20인승 시내버스, 차선도 없는 도로에서 리어카를 밀고 가는 아주머니, 시골에서 갓 올라온 듯한 고운 한복차림의 아주鍛區?'
사진 위(대구시청 강문배 사진실장 제공)는 1967년 1월 24일 화요일 계산오거리에서 바라본 동산병원 뒤편 '동산'(현재 중구 성내 2동)의 모습이다.
동서관통도로가 막 뚫리기 직전, 본격적인 시가지 개발이 시작될 무렵의 정겨움이 묻어난다.
저멀리 와룡산 능선이 아련하게 다가온다.
워낙 오래전이다 보니 이곳을 정확하게 기억하는 사람조차 드물었는데 사진 오른편 위쪽 초가 사이에 동산병원 선교사 사택을 보고 확인할 수 있었다.
40여년 전부터 이곳에서 세탁소를 운영해 왔다는 토박이 김해용(66)씨는 "수도가 나오지 않아 집집마다 공동수도에서 물지게로 물을 사다 먹던 시절이었다"며 "언덕 위에는 동산병원의 빨간 벽돌담이 쳐져 있어 동네 아이들의 놀이터가 되곤 했다"고 회상했다.
신명여고 옆 '90계단'을 따라 꼬불꼬불 언덕을 오르면 만나는 초가집들에는 집집마다 2, 3가구가 세들어 살고 있었고 연탄 100장을 채워 넣는 집은 부자 소리를 들었다고 했다.
시장 막일거리, 노점상을 하면서 넉넉하지 못한 살림을 살았어도 결혼식이라도 있을라치면 집집마다 떡을 돌리며 인정을 내던 때였다고 했다.
김씨는 "합승(미니버스), 브리샤·포니택시가 다녔는데 워낙 차가 귀하다 보니 큰 도로에도 더러 차선이 없었고 무단횡단이란 말도 몰랐다"며 "초가집 굴뚝에서 밥 짓는 연기가 모락모락 날 때쯤 골목에서 놀던 아이들이 제 엄마가 부르는 소리에 달려가던 모습이 아련하다"고 추억했다.
현재 이 일대는 반월당 네거리와 성서방면을 잇는 교통 혼잡지가 됐다.
사진 속 초가집들은 엘디스리젠트 호텔(구 동산호텔)과 아파트(동산맨션)로 변했고 사진관 자리에는 대형 옥외전광판이 들어서 옛 정취를 찾아보기 힘들게 됐다.
최병고기자 cbg@imaeil.com
사진설명 : 계산오거리(구 고려예식장 방면)에서 바라본 동산병원 뒷산 초가 동네의 1967년 풍경(사진 위). 예전 사진관 자리에는 현재 대형 옥외 전광판이 들어서 있다. 저멀리 아련하게 보이는 와룡산 능선과 맞춰보면 어제와 오늘의 달라진 풍경을 확인할 수 있다. 이채근기자 mincho@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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