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동강물 풀린다는 우수(雨水)가 지났는데도 날씨는 만만찮다. 옷 속을 파고드는 어슬어슬한 한기. 겨울의 끝과 봄의 시작이 맞물리는 이맘때면 어김없이 찾아오는 춘한(春寒)이다. 도처에 쿨룩거리는 사람들이 적지 않은 걸 보면 한겨울의 동장군보다 봄추위가 더 독한 것 같다.
계절이 바뀔 때면 통과의례처럼 환절기를 거친다. 겨울에서 봄으로 갈 때는 서너 차례 꽃샘추위를 겪어야 한다. 꽃가루며 황사바람 따위가 성가시기도 한다. 봄에서 여름으로 넘어갈 때는 얌전하다가도 여름에서 가을로 바뀔 땐 또 심통을 부린다. 크고 작은 태풍들로 산하를 헤젓고 생채기를 내기도 한다. 겨울로 가는 길목은 천지가 낙엽으로 뒤덮여 마음 갈 곳 없게 만든다. 그러니 이런 틈새계절엔 어쩔 수 없이 싱숭생숭, 가슴앓이를 할 수밖에.
환절기는 계절 사이의 교차지점이자 점이지대(漸移地帶). 두 계절의 특상(特相)이 일부 겹쳐지기도 하고 한쪽에서 다른 한쪽으로 옮겨가는 지점이기도 하다. 그래서 환절기는 좀 혼란스럽다. 하지만 우리를 향한 대자연의 속 깊은 배려를 엿볼 수도 있다. '곧 계절이 바뀌니 준비를 하거라' 하고 일러준다. 돈을 향해, 성공을 향해, 일류대학 합격을 향해 옆도 뒤도 안 보고 앞만 보고 달리는 우리더러 잠시 멈춰보라고, 주변도 둘러보며 가라고 한다. 환절기는 계절의 예방주사, 일상의 쉼표인 셈이다.
요 며칠간 억대 내기 골프가 도박이 아니라는 판결로 민심이 꽤나 수런거린다. 신선한 판결이라는 반응도 있지만 개미처럼 일해봐야 입에 풀칠도 힘겨운 서민들에겐 우연〉실력=도박, 우연〈실력=게임은 아무래도 희한한 공식일 뿐이다. 네티즌의 90% 정도가 도박 쪽에 표를 던지는 걸 봐도 그러하다.
찬 바람 속에 날아오는 화신(花信)이 반갑다. 서녘 남도땅에선 화사한 홍매화가 꽃망울을 터뜨렸다 하고, 섬진강변 마을에도 매화향이 은은히 퍼지고 있다 한다. 해풍 속에 산다화(山茶花: 동백)는 지금쯤 제법 허드러졌으리라. 발치엔 모가지째 툭툭 떨어진 붉은 송이들이 꽃방석을 이루고 있을지도 모른다. 녹차에 띄운 매화 꽃잎이 문득 운치를 돋울 때이다. 술 좋아하는 이들은 막걸리 생각에 목이 간질간질해질 터이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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