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유럽의 옛 城을 찾아서-(6)스위스 시옹성

스위스 제네바에서 로잔느를 거처 비네브에 이르는 약 32km의 호숫가를 따라 북쪽 언덕 길 주변에는 중세 때부터 축성된 수많은 성이 늘어서 있다. 수세기를 거쳐오는 동안 왕조와 귀족 영주들의 몰락과 함께 많은 성들은 폐허가 되거나 호텔이나 관광명소로 탈바꿈했다.

독일 라인강 주변 성들이 그랬던 것처럼 호수를 낀 스위스의 성들도 해상을 오가는 배들과 상선들을 상대로 통행세나 물품세를 징수하는 영주계급의 수탈 근거지 역할을 해왔다. 특히 호수 속 암석 위에 세워진 시옹성은 남아 있는 스위스의 성들 중 가장 아름다우면서도 중세 때 원형을 잘 보존해온 성으로 꼽힌다. 뛰어난 경관과 성의 아름다움 덕분에 관광명소로 1년 내내 전 세계서 찾아오는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이질 않고 있다.

시옹성의 특성은 라인강의 성과 달리 해상을 오가는 선박뿐 아니라 성 뒤쪽 이탈리아로 뚫려 있는 고갯길의 통행인들에게도 통행세를 거뒀다. 따라서 성의 구조가 전형적인 영주의 주거지 형태에다 해상과 육로로부터 방어가 필요한 군사요새형의 구조를 갖추고 있다.

성벽에 뚫어둔 화살과 대포, 총구멍의 디자인은 유럽 어느 성보다도 다양한 형태를 갖추고 있다. 십자형, 타원형, 사각형, 정방형, 열쇠구멍형, 돌출형 등으로 어떤 종류의 무기로든 성밖을 공격할 수 있는 요새를 구축했다. 성의 구조와 축조 목적이 전쟁과 세금 징수, 적으로부터의 방어에 걸맞게 지어진 만큼 성안의 구조물들도 대부분 군사목적에 맞게 꾸며져 있다. 정적을 가둬 두기 위한 지하감옥이 어느 성보다 철통같이 지어졌고 내부 소방시설과 모든 성 안방에서 바깥을 내다볼 수 있게 만든 것 등 항상 경계와 의심, 그리고 공격과 방어에 치중한 성임을 느끼게 한다.

감옥 자리에는 실제 470년 전 제네바 독립운동을 한 종교지도자를 4년 간 쇠사슬로 묶어둔 기둥이 남아 있다. 병기고에는 아직 중세 때의 갑옷과 창, 칼, 대포 등 엄청난 분량의 무기가 보존돼 있다. 병기고나 주방 바닥에 깔린 대리석 한 개의 길이도 6m씩 될 만큼 견고해 화려한 성의 위용은 800년이 지나도록 조금도 바래지 않고 있다. 비록 지금은 통행세나 물품세를 착취하지는 못 하지만 대신 1년 내 개방된 관광명소로서의 입장 수입으로 성의 유지 관리를 해나가고 있다.

축성초 암석 위에 세워졌던 시옹성은 800년 전 대규모로 확장 축조됐고 시옹 지방의 주교(主敎)소유로 돼 있던 성이 12세기부터 시보아라는 백작에게 넘어가면서 다시 재건, 현재의 모습을 갖추었다. 시옹성은 800년 가까운 세월 동안 끊임 없이 재건 보수되는 과정에서 모습이 훨씬 더 웅장하고 아름다워졌다. 따라서 축성 후 쇠퇴하거나 파괴되고 쪼그라든 대다수 유럽의 성과는 달리 지금도 성 안에 들어서면 중세 때의 성주와 백작들이 성문을 열고 걸어 나올 것만 같은 느낌과 분위기를 주고 있는 매력 있는 성이다.

글: 김정길 본사 명예주필

사진: 권정호 한국사진기자회 명예회원

사진: 호수 속 암석 위에 세워진 스위스 시옹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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