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시인과 술' 계간 시인세계 특집

시인과 술은 바늘과 실의 관계인가. 제 코에 실을 꿰어 달고 옷감 위에 온몸을 던지는 바늘은 언어의 밭을 갈고 재봉하는 시인의 모습과 같다.

옷감 위를 누비는 바늘처럼 술은 피폐한 일상에 굴하지 않고 꼿꼿이 고개 세운 시인을 시적 영감과 도취의 세계로 이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숱한 예술가들은 "항상 취해 있어야 한다"는 보들레르의 주정 섞인 말에 실없이도 공감했다.

그러나 "요즘 시인들은 술을 마시지 않는다"는 고은 시인의 일갈처럼 오늘날 한국 시단에서는 젊은 디오니소스를 쉬 찾을 수가 없는가. 단정한 아폴론적 몽상과 함께 시와 삶에 대한 열정적인 도취가 그립다.

시 전문 계간지 '시인세계' 2005년 봄호가 '시인과 술'이라는 주제의 기획특집을 마련했다.

술과 예술과의 관계를 살펴보고 시인들의 체험적인 술 이야기를 통해 한국 시단의 생생한 술 풍경의 한 단면을 보여주고 있다.

시 창작예술의 촉매제로서의 술과 술문화, 그리고 낭만이 하나 둘씩 사라져가고 있는 이 시대에 이번 '시인과 술' 특집은 시인들의 낭만적 도취와 시적 열정에 대한 그리움이자, 행복한 글쓰기를 가능하게 했던 하얀 마법에 대한 새로운 주문이다.

이번 특집의 총론적인 글에서 장석주 시인과 문학평론가 정규웅씨는 술과 관련한 한국 시단의 풍경을 스케치했다.

장석주 시인은 '밤에는 깊은 꿈을 꾸고/ 낮에는 빨리 취하는 낮술을 마시리라/ 그대, 취하지 않으면 흘러가지 못하는 시간이여'(정현종의 '낮술'), '골목에서 골목으로/ 거기 조그만 주막집/ 할머니 한 잔 더 주세요/ 저녁 어스름은 가난한 시인의 보람인 것을…'(천상병의 '주막에서') 등의 시구절을 통해 열정과 취기로 고조된 시인의 영혼을 이야기한다.

정규웅은 1970년대의 고은, 박재삼, 박용래 시인을 회고한다.

고은 시인의 파격적인 취중 일화를 비롯해 무슨 술이든 즐겨 마시며 사랑과 추억을 이야기하던 박재삼 시인과, 늘 고량주를 한 모금씩 마시며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던 박용래 시인과, 술 때문에 세상을 떠난 임홍재·박정만 시인을 떠올린다.

책상 서랍에 항상 술병을 넣어두고 수시로 꺼내 마셨던 김광협 시인, 밤낮을 가리지 않고 술을 즐겼던 조태일 시인, 아는 사람에게 돈을 달라고 해 무조건 술집으로 달려가곤 했던 천상병 시인도 빼놓을 수 없다.

문학평론가 박철화씨는 '악의 꽃'의 시인 보들레르를 중심으로 '도취의 시학'을 논했다.

랭보의 '도취의 아침'과 아폴리네르의 '포도월'에서도 취기 가득히 익고 있는 보들레르가 빚은 도취의 시학을 볼 수 있다.

시인들이 털어놓은 체험적인 일화들은 술과 시인이 맺어진 보다 생생한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음주 18단계론으로 유명한 조지훈 시인은 '주도유단(酒道有段)'과 '술은 인정이라' 수필에서 술로 이어지는 고귀한 인정을 그리고 있다.

조향래기자 swordjo@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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