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조용헌의 사찰기행

조용헌 지음/이가서 펴냄

한국의 절에는 바위와 소나무가 있고, 출가한 산사람들이 살고 있다. 절에는 선조의 문화와 사상이 있고, 깊고 너른 불교의 가르침이 있다. 6개월 단위로 빠르게 변하고 있는 한국에서 1천 년 넘게 지속되어 온 조직과 인맥을 가진 것이 바로 불교이다.

불행하게도 우리에게는 과거가 남아 있지 않다. 모두 도태되고 밀려나고 허물어져 버렸다. 그 역사의 비바람 속에서도 아직 버티고 있는 게 절이다. 절은 번뇌를 없애기 위한 장소이다. 거기에는 불교사상이 스며있다. 한국의 절에는 영험이 서려 있다. 풍수가 깔려 있다. 땅과 인간이 어떤 방식으로 교감했는가를 절에 가보면 안다. 영험이 어려 있는 사찰은 지령이 깃들어 있다.

'조용헌의 사찰기행'은 대학에서 사주명리학을 강의하고 있는 저자가 지난 18년간 답사했던 우리나라의 산과 사찰 중 22곳을 소개한 책이다. 이들 사찰에는 천문, 지리, 인사(人事) 즉 삼재(三才)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저자 특유의 시선이 담겨 있다.

여느 여행 정보에서도 얻을 수 없는 맛깔스러움을 느낄 수 있다. 그것은 서구적인 시각이 아니라, 천년이 넘게 이 땅에서 절에 다니던 우리 조상들이 보던 시각으로 쓴 책이기 때문이다. 절에는 수천 년이 넘게 이어져 오던 우리 조상들의 민속신앙이 숨겨 있다. 산신이 있고, 칠성이 있고, 용왕이 있다. 저자는 이것들을 사찰의 좌향과 주위의 산과 마을과의 어울림, 근처 물줄기의 방향, 입구의 트임과 설치된 기물 등 사찰의 지리(地理)를 풀어놓으면서 시작한다.

또 각 사찰마다 한두 명씩의 걸출한 승려도 소개하고 있다. 지리와 인사가 어떻게 조화를 이루며 사찰이 오랜 세월 건재할 수 있었는지를 보여주는 것이다. 갑오농민전쟁의 진원이 되었던 선운사 도솔암 마애불, 미륵 신앙의 본거지였던 모악산 금산사, 총천연색의 호랑이상이 자리한 두승산 유승사, 전생과 이생이 관련을 맺고 복을 내린다는 승가산 흥복사 등이 전설의 고향에 나오는 이야기 한 토막처럼 정겹다.

조향래기자 swordjo@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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