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세계의 지방은행을 가다/(9)미국-지역은행에서 대형은행으로

드넓은 영토를 가진 미국에는 9천여 개의 크고 작은 은행들이 있다. 세계 최대 은행인 씨티은행(그룹)을 비롯한 체이스은행, 뱅크 오브 아메리카 등 대형 은행들이 잘 알려져 있지만 지점이 10개 미만인 동네 은행에서부터 한 주에서만 영업하는 지역 은행들이 전국 곳곳에 퍼져 있다.

▲미국 4위 은행으로 성장

그 중에는 노스캐롤라이나주 윈스턴 세일럼의 지역 은행에서 출발, 81차례의 합병을 통해 여러 주에서 영업하는 대형 지역은행으로 급성장한 와코비아은행(Wachovia Bank)도 있다. 1866년 조그만 시골은행으로 출발, 미 남동부의 대표적인 '슈퍼 리저널 뱅크'로 성장하였으며 미국 금융가에서 지역밀착 경영이 가장 뛰어난 은행으로 유명하다.

미국에서는 한 주에서만 영업하는 은행을 '리저널 뱅크'(지역은행)라고 부르며, 지역은행의 범위를 넘어 3∼5개 주에서 영업하는 은행을 '수퍼 리저널뱅크', 뉴욕에 근거를 둔 거대은행을 '머니센터 뱅크' 라고 부르는데 와코비아은행은 리저널뱅크에서 슈퍼 리저널뱅크로 커진 은행이다.

와코비아는 독일어 '와카우'에서 나온 말. 와카우는 독일 남부 다뉴브 강을 따라 형성된 계곡 이름인데 독일의 모라비아파 기독교도 이주민들이 '신세계'의 강과 계곡이 와카우를 닮은 점에 착안, 은행 이름을 뽑았다. 와코비아 본점 빌딩 27층에 개척 이주시대의 역사자료를 보관한 모라비안 룸을 설치, 고객들의 이해를 돕고 있다. 윈스턴 세일럼은 1700년대 중반 독일에서 이주한 모라비아파 기독교인이 만든 도시이기도 하다.

와코비아은행은 수많은 합병을 통해서 미국내 자산규모 4위 은행으로 자리잡았다. 1999년 말 순위는 16위. 노스캐롤라아나주의 윈스턴 세일럼과 조지아주의 애틀랜타, 두 곳에 본부를 두고 플로리다, 조지아, 노스·사우스 캐롤라이나, 버지니아 등에 700여 지점, 2만3천여 사원을 거느리면서 자산규모 674억 달러였다. 5년 가까이 지난 지난해 9월 현재 순위는 4위. 몇 년만에 우수한 대형은행으로 급성장한 것이다.

▲81차례 합병에 한 번도 실패 없어

이 은행이 성공을 거둘 수 있었던 것은 철저한 준비와 과감하면서도 신중한 사업 전략, 인재를 중시하고 키우는 풍토 등이 어우러졌기 때문이다. 와코비아은행의 장기 전략은 작은 규모의 소매금융 은행을 지속적으로 흡수, 합병하여 규모의 경제를 확보하고 미국내 영업지역 확장을 통해 시장의 지배력을 강화해 나가는 것. 퍼스트유니온은행과 합병, 미국내 동부 연안 대부분의 지역으로 영업망을 확장했으며 앞으로도 소규모 은행을 인수, 합병하여 중부, 서부 쪽으로 영업망을 넓힐 계획이다.

합병 전략은 철저한 준비 끝에 실행, 성공률이 매우 높은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양질의 소규모 은행을 발굴, 보통 2년여의 준비기간을 거쳐 합병에 나서는데 지금까지 81차례의 합병을 시도, 이 중 2차례의 합병 과정에서 위기를 겪었을 뿐 나머지는 죄다 성공으로 이어졌다. 합병 이후 합병 대상 은행의 조직문화에 대한 다양성을 존중함으로써 통합에 따른 진통을 최소화한 것도 성공으로 이끈 주요 요인이 됐다.

▲비이자수익 비중 높아

또 사업 포트폴리오를 짤 때 이자 부문과 비이자 부문이 상호 보완적인 관계를 이룰 수 있도록 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한쪽 사업이 안 좋을 때 다른쪽 사업이 상대적으로 수익성을 높여 안정적인 수익을 거둘 수 있도록 한다. 사업 포트폴리오 차원에서 투자은행 사업을 병행하는데 다른 투자은행처럼 대기업에 투자하기보다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영업하고 있으며 투자은행 사업을 성공적으로 끌어가기 위해 다른 투자은행의 사업부를 인수하여 진출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같은 맥락으로 투기적 거래를 자제하는 경영원칙을 고수, 경영의 안정성도 높은 편이다. 1998년과 1999년에 걸친 러시아, 브라질의 금융위기 이후 뱅커스트러스트, 골드만삭스 등 미국 대형은행들이 헤지펀드 파산 때문에 곤경에 처해있을 때에도 와코비아는 건전한 재무상태를 유지했다.

▲부동산, 헤지펀드에는 투자 안해

부동산투자는 거의 하지 않으며 투자위험이 높은 헤지펀드에는 거의 돈을 빌려주지 않는다. 다른 은행들이 증시 활황을 타고 주식, 채권 매매를 대폭 늘리더라도 와코비아는 증권 매매 규모를 자산의 10%선으로 억제하고 있는데 수익률이 아무리 높다 하더라도 자산 건전성을 해치는 위험한 투자는 좋지 않다는 경영방침 때문이다.

영업적 측면에서 일반영업 고객을 4단계로 분류, VIP고객은 1년에 3번 이상 대면 접촉을 하고 잠재 우수고객은 전화로 지속적으로 접촉, 관계를 맺어나간다. 일반 고객은 데이터베이스에서 지역 및 인구통계학적 구분을 통해 일정한 범위를 선택, 전화마케팅을 하고 신규 고객은 45일이 지난 후 데이터베이스에 포함시켜 거래 실적에 따라 분류, 유지 관리한다.

▲불황에도 대출 회수 안해

'고객 중심의 경영'도 이 은행이 추구하는 중요 전략. 1980년대 후반 미국의 경제 거품현상이 꺼지면서 불황이 깊어졌을 때 많은 은행들이 기업대출을 줄이고 대출자금을 잇따라 회수한 데 비해 와코비아은행은 그러지 않았다. 당시 와코비아은행은 고객들에게 대출을 기피하지 않은 대신 대출 리스크가 상승한 점을 고객들에게 충분히 설명하고 대출금리를 올리는 방식으로 난국을 타개하였다.

불황이라고 대출을 줄이면 지역경제가 엉망이 되어버리며 지방은행이 지역 경제의 버팀목 역할을 해야한다는 점을 염두에 뒀기 때문이다.

뉴욕의 월가로부터 '와코비아는 세계 최고수준의 신용관리 시스템을 가지고 있다'는 말을 들을 정도로 부실 여신이 극히 적은 것 역시 눈길을 끈다. 이는 대출결정을 할 때 수십 년간에 걸친 신용심사 노하우가 쌓인 지침서를 따르도록 하고 있기 때문이다.

메리 베스 국제담당 부장은 "지침서에 따라 대출결정을 하면 나중에 대출이 잘못돼도 행원들을 문책하지 않는다"며 "직원들이 대출심사 원칙을 지키는 걸 무엇보다 중요시하고 대출이 나중에 부실이 됐는지 여부는 그 다음의 문제"라고 말했다.

▲조직중시 사풍

와코비아은행은 또 인재를 양성하고 소중히 여김으로써 은행원들의 충성심을 이끌어내고 있다. 다른 은행에 비해 은행원을 신중히 선발하되 뽑고난 후에는 교육과 투자를 아끼지 않는다. 다른 투자은행처럼 쉽게 뽑고 가볍게 내치지 않으며 통상 2년의 교육과정을 거치게 해 정예 은행원으로 양성한다.

조직 문화도 개인의 자유를 중시하는 미국적 풍토가 배어 있는 일반적인 미국 기업들과 달리 조직을 중요시한다는 점에서 독특하다. 와코비아 은행원들은 웃옷 주머니에 '와코비아의 약속'이라는 이름의 카드를 한 장씩 지니고 다니는데, 카드에는 '손님 한분 한분을 정성을 다해 대한다' '손님 한분 한분에게 모든 관심을 기울인다'의 근무지침이 적혀있다.

매일 아침 사옥에 사기를 달 때 사원들이 사기를 들고 행진하는 전통이 있으며 이때 지나가는 행원들이 그 자리에 멈춰 서서 경례를 하는 관행도 이채로운 모습이다. 냉철한 비즈니스를 하는 미국은행이라기보다는 한국이나 일본 은행들과 비슷한 분위기를 품기고 있다.

지역 특성상 허리케인이 자주 발생, 주민들이 피해를 입기도 하는데 자연재해가 발생할 경우 단기지원 대출상품을 마련, 피해 복구를 돕고 각종 수수료를 면제해주는가 하면 대출 고객들에게 한 달간 일시 지불 연기를 해주는 등 돕고 있다. 노스 캐롤라이나 지역 대학생들과 교직원들을 대상으로 캠퍼스카드를 발급, 교내 은행 자동화기기를 이용할 수 있도록 하고 그 외의 경제활동도 할 수 있도록 밀착 경영을 하고 있다.

김지석기자 jiseok@imaeil.com

사진설명 : 와코비아은행은 치밀한 준비 후 성공적인 합병을 통해 지역은행에서 대형은행으로 성장했다. 사진은 노스 캐롤라이나 컨스빌에 있는 와코비아은행 지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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