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아빠가 읽어주는 전래동화-가짜 사주팔자

옛날 옛적 어느 곳에 한 양반이 살았는데, 이 양반한테 외동아들이 하나 있었어. 아들이고 딸이고 간에 자식이라고는 이 아이 하나뿐이었지. 그러니 얼마나 귀해? 그저 놓으면 깨질세라 불면 꺼질세라 고이고이 키웠지.

그런데, 하루는 이 양반이 아들 사주팔자를 딱 뽑아 보니 글쎄 평생을 빌어먹을 팔자라고 나오지 뭐야. 사주팔자라고 하는 것은 타고나는 것이고 사람의 힘으로 못 고치는 건데, 이것이 평생 빌어먹을 팔자라고 나오니 기가 막히지. 그만 걱정이 돼서 밥도 안 먹고 드러누워 끙끙 앓았어.

그걸 보고 아들이 무슨 일로 그러느냐고 묻지. 아버지가 사주팔자 이야기를 다 해 주니까 이 아들 하는 말이,

"그러면 제가 이 길로 집을 나가서 팔자땜을 하고 올 테니, 제게 큰 벼슬하고 부자 되어 잘 산다는 가짜 사주팔자를 하나 써 주십시오."

이러거든. 아버지가 하릴없이 가짜 사주팔자를 한 장 써 줬어. 아들은 그것을 고이 접어서 옷섶에 넣고 바늘로 꿰맨 다음, 그 길로 집을 떠났지.

집 떠난 아들은 여기저기 떠돌아다니다가 어느 마을 글방에까지 가게 됐어. 거기서 마당도 쓸고 부엌일도 하면서 동냥글을 얻어 배웠지. 이 아이가 워낙 부지런히 일하고 곰살궂게 구니까, 글방 훈장도 내쫓지 않고 그냥 눌러 살게 놔뒀어. 머슴이나 종처럼 궂은 일을 시키면서, 다른 아이들 글 가르칠 때는 어깨너머로 배우게 해 줬단 말이지.

그런데, 글방 훈장이 가만히 보니까 얘가 밤낮 옷섶을 꼭 쥐고 애지중지하거든. 그 안에 무엇인진 몰라도 아주 귀한 게 들어있는 것 같단 말이야. 궁금해서 물어 봐도 그냥 웃기만 하고 아무 말도 안 하니까 점점 더 궁금해지네. 그래서 이 훈장이 하루는 얘가 잠자는 사이에 몰래 옷섶을 뜯어 봤어. 탁 뜯어 보니까 거기서 종이 한 장이 나오는데, 사주팔자 써 놓은 종이거든. 그런데 그 사주팔자가 참 기가 막히게 좋단 말이지. 큰 벼슬을 하고 부자 되어 잘 산다고 되어 있으니 그 얼마나 좋아?

'이 아이가 이렇게 좋은 팔자를 타고났단 말인가? 이제부터 이 아이를 다시 봐야겠구나.'

하고, 그 다음부터는 아주 대접이 싹 달라져. 궂은 일도 안 시키고 글공부할 때는 제일 앞자리에 앉혀 놓고 가르치고, 이렇게 아주 잘 해 주거든. 그러니 글도 더 잘 배우게 돼서, 얼마 뒤에는 훈장이 보기에 더 가르칠 것이 없을 만큼 됐어.

그러다가 과거 보는 때가 됐지. 훈장은 말에다가 이 아이를 태워서 경마잡이를 딸리고 노자까지 두둑하게 줘 가지고 서울에 과거 보러 보냈어. 큰 벼슬을 할 팔자라 하니 과거 급제는 따 놓은 당상 같아서 말이지. 그래서 이 아이는 훈장 덕분에 서울로 과거를 보러 갔는데, 본래 똑똑한 데다가 글공부도 부지런히 한 덕분에 과거에 급제를 했단다.

과거에 급제를 해서 벼슬까지 얻어서 돌아오니 일이 다 잘 됐지. 그 뒤로 벼슬이 점점 높아져서 나중에는 큰 벼슬을 하고 부자 되어 잘 살았다니, 과연 그 가짜 사주팔자대로 됐지 뭐야. 가짜 사주팔자가 진짜 사주팔자가 된 거지. 그러니 사주팔자라고 하는 것은 타고나는 것이지마는, 사람의 힘으로 얼마든지 고칠 수 있는 거래.

서정오(아동문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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