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한 재수종합학원에 들렀다. 마침 잘 아는 수학과 강사가 수업을 마치고 나오는데 표정이 무거웠다. "학생들이 수학을 너무 못 해 큰일입니다. 상위권이 인수분해도 제대로 해결을 못 해요. 올해 재수는 수학과의 전쟁이 되겠어요." 복도에서 떠들고 있는 학생들에게 그러냐고 했더니 얼굴이 금세 어두워졌다. "고1때 수학 공부 해 본 뒤로 꼭 2년이 됐습니다. 갑갑하죠. 중학교 수학 책 사서 보는 친구들도 있어요."
학원에서 나오는 길로 가까운 고교를 찾아갔다. 수학과 교사를 찾아 물었더니 "상위권 일부를 제외하면 기초가 대단히 취약하지만 재수생들보다는 나은 형편"이라고 말했다. 그래도 학교에서 "내년에는 제도가 바뀌니 수학 시험을 쳐야 한다"라고 지난해 초부터 목청을 높여 그나마 수학 공부를 완전히 팽개치지는 않았다는 것이었다.
왜 이런 기막힌 일이 생겼을까. 원인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있다.
직접적인 이유는 교육부가 2005학년도 대입제도를 개편하면서 '선택과 집중'이라는 대명제 아래 수학이나 국어를 반영하지 않는 '2+1' 체제를 도입했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2006학년도에 대부분의 대학이 수학과 국어를 반영하는 '3+1' 체제로 바꾼다고 하니 부랴부랴 수학 책에 쌓인 먼지를 털어내야 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이런 현상은 대구'경북 지역이 특히 심각하다. 지난해 지역 대학들이 의예과 등 일부 학과를 제외하고는 전부 '2+1' 체제를 도입했다가 2006학년도에 대부분 '3+1'로 전환하는 탓이다.
그렇다면 지역 대학들은 왜 일 년도 못 갈 '2+1' 체제를 약속이나 한 듯이 선택했을까. 고교 교사들과 학원 관계자들은 가장 먼저 제도 도입을 발표한 경북대의 책임이 가장 크다고 지적했다. 경북대가 수학이나 국어를 반영하지 않는다고 밝힌 마당에 학생 모집 위기를 겪는 여타 사립대들이 어떻게 수학을 공부한 학생만 받겠다고 나설 수 있겠냐는 얘기였다.
경북대를 비롯한 많은 국립대들이 앞장서 '2+1' 체제를 도입한 건 무엇 때문일까. 교육부의 당근 정책 때문이라는 이야기가 파다하다. 새 제도를 내놓은 교육부가 이를 확산시키기 위해 수십억 원의 지원금을 약속했다는 것이다.
곰곰이 짚어보면 궁극적인 원인은 고교의 교육과정 운영권과 대학의 선발권이 명확히 정립되지 않은 데서 찾을 수 있다. 사실 대학의 학생 선발은 고교별로 운영되는 교육과정을 해석해 나름대로의 기준에 맞는 인재를 뽑으면 그만인 일이다. 다른 사람, 특히 교육부가 이러쿵저러쿵 할 필요가 없다. 공정성을 확보한답시고 학생부며 수능이며 논술'면접이며 모든 것을 숫자로 표시하도록 한 것도 이런 개입이 작용한 것이다.
선발의 책임을 지지 않는데 익숙해진 대학들은 이제 선발에 대한 권리 개념도 극히 취약하다. 그러다 보니 교육부의 한 마디에 전국 대학들이 이리저리 우루루 몰려다니고, 고교 교육과정은 여기에 맞춰 춤을 춘다.고교 교사들이 아무리 수업을 알차게 하려고 해도 이런 상황에선 역부족이다. 피해는 고스란히 학생들의 몫이다. 교육당국은 올해 새로 수학 공부를 시작하는 수험생들보다 몇 배는 더 열심히 공부를 해야 할 것이다.
김재경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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