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학습만화 어떻게 읽어야 하나

'일단 흥미와 관심을 끄는 게 중요하니까 만화로라도 시작하는 게 좋겠지'

요즘 유행하는 이른바 학습만화를 선선히 사주는 학부모들의 심정이다. 글자가 조금만 많아도 책을 내팽개치던 아이가 만화라면 금세 달려드는데다 적잖은 지식과 교양까지 쌓을 수 있다는 데 매력을 느끼기 때문이다. 만화 '그리스'로마 신화'를 읽은 아이가 복잡한 신들의 계보를 줄줄이 꿰고 이름을 읊어댈 때는 뿌듯함마저 느끼게 된다. 하지만 이런 틈을 비집고 조악한 만화들이 쏟아지면서 제대로 된 걸 골라 읽히기가 쉽지 않다. 약이 될 수도 있고, 독이 될 수도 있는 만화를 어떻게 대해야 할 지 알아보자.

▲ 만화책 홍수시대

2000년부터 아동서 매장을 점령하기 시작한 만화 열풍은 올해도 숙지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교보문고 대구지점이 집계한 2월 셋째주 아동서 베스트셀러 목록 중에는 '21세기 먼나라 이웃나라 12'와 벌써 시리즈 7권을 내 놓고 있는 '마법천자문' 등 만화책 8종이 상위 20위 안에 랭크돼 있다. 여기에 학습지'참고서류가 8종을 차지하고 있는 것을 감안한다면 일반 아동 서적은 고작 4종에 불과한 실정이다.

교보문고 관계자는 "2000년 '만화로 읽는 그리스'로마 신화'가 인기를 끌면서 학습만화 붐이 형성되기 시작했다"라며 "아동코너 여기저기 앉아 책을 뒤적이는 학생들 4명 중 3명은 만화책을 보고 있을 정도"라고 했다.

이처럼 만화가 인기를 끄는 것은 딱딱하고 어려운 것을 싫어하는 아이들의 성향 때문. 게다가 '학습'과 연관돼 있다는 홍보까지 곁들이면 학부모들의 마음도 느슨해지기 쉽상이다. 만화라면 정색을 하던 부모들도 '학습만화'라는 타이틀에는 모든 것을 용인하는 분위기이다. 더구나 요즘 아이들이 책 읽을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는 것도 중요한 원인이 되고 있다. 학교와 학원을 오가며 공부에 찌들린 아이들에게 읽기 편한 만화는 더없이 훌륭한 자투리 시간 활용 수단이 되기 때문이다.

▲어떻게 고르고 읽힐 것인가

요즘 아이들은 웬만한 고전들까지 만화로 보려고 든다. 이 때문에 심지어는 '논어', '삼국유사' 등의 한서까지도 만화로 만들어지고 있는 실정이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부모가 분명한 선을 그어주는 것이 필요하다고 조언한다. 학습만화의 분명한 장점은 살려 아이의 흥미 유발에 최대한 활용하되 잘못된 독서 습관에 길들여지지 않도록 할 필요가 있다는 것.

수학, 과학, 지리 등의 분야는 만화가 이해를 돕는 촉매제로 작용하지만 논리적인 통찰력을 가지고 복잡한 배경을 함께 이해해야 하는 고전이나 문학작품, 신화, 역사 등의 소재는 사고를 단순화시킬 위험성이 높아 신중하게 선택해야 한다. 선으로 표현하는 평면 그림으로 내용을 이해하게 될 경우 부분적 이해만으로 선입견을 갖게 돼 '장님 코끼리 만지기' 식의 오류를 범할 수 있다는 것.

특히 인기를 얻고 있는 역사 학습만화의 경우에는 역사적 사실에 대한 올바른 배경 이해와 균형잡힌 시각을 갖지 못하고 단순히 그림 보기에 그칠 우려가 높아 부모의 지도가 필요한 부분이다. 또 잘못된 내용을 담고 있거나 잡다한 지식을 조악하게 나열한 학습 만화는 오히려 안보느니만 못한 결과를 가져오므로 부모가 먼저 내용을 읽어보고 조심스럽게 골라야 한다.

▲학습만화 넘어서기

전문가들은 만화가 적절한 효과를 발휘할 수 있는 나이는 초등학교 고학년 시기까지라고 말한다. 너무 어려서부터 만화에 빠져들어도 한창 왕성해지는 호기심과 상상력을 단순한 그림 속에 묶어두는 역효과를 가져오고, 중학생이 되어서도 만화책만 보려 한다면 독서습관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는 것.

특히 만화에만 너무 빠져들어 뭐든 만화로만 보려는 학생의 경우에는 부모의 지도가 시급하다. 모든 읽기를 중단시키고 아이를 밖으로 끌어내 몸으로 하는 활동을 통해 만화책을 잊도록 한 다음 차근차근 올바른 독서습관을 길러줘야 하는 것. 그렇지 않으면 사고력과 어휘력이 부족해 고학년으로 갈수록 학습에 적응이 어려워진다. 아무리 '학습만화'라고 해도 동기유발이나 놀이를 위해 과도기적으로 잠시 읽는 것이라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또 적절한 학습효과까지 한꺼번에 누리게 하려면 학습만화로 흥미를 유발한 뒤 좀 더 깊이있는 독서를 유도할 필요가 있다.

한윤조기자 cgdream@imaeil.com

도움말 : 배선윤(글쓰기 심리 연구소 '마음 열림' 소장), 조영미(한우리독서문화운동본부 대구지부장), 서정오(아동문학가)

◆수학

아이가 수학에 대해 거부감이나 두려움을 가진 경우 효과적이다. 단순히 계산법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수의 개념과 기본원리가 상세히 설명된 것이 좋다.

◆과학

단순 지식보다는 에피소드 중심의 구성이 좋다. 다만 만화책을 통해 과학을 모두 깨우치게 하겠다는 욕심보다는 흥미를 불러일으키는 정도로 사용하는 것이 적합하다.

◆지리

우리나라 곳곳의 지리정보나 외국의 위치를 이해하는데는 만화가 일반 책보다 효과적이다. '먼나라 이웃나라' 등의 만화책이 주축.

◆영어

아이가 기본적인 영어 실력을 어느 정도 갖췄을 때 이미 알고있는 친숙한 동화부터 권하는 것이 좋다. 초등학생 권장 영어 어휘는 600개 정도라고 한다.

◆한자

아이들이 재미있게 한자를 배우는데 효과적이지만 과도한 욕심은 역효과를 부른다. 특히 한자의 상형원리가 아닌 끼워맞추기 식의 이야기는 피해야하며 너무 폭력적인 그림도 피하는 것이 좋다.

◆명작

명작이나 위인전은 반드시 일반책을 읽도록 해야 한다. 만화책은 줄거리만 간신히 알게 할 뿐 원작에서 얻을 수 있는 감동이나 맥락을 이해하고 상상력, 표현력을 키우기는 어렵다.

◆역사

배경없이 사실만을 받아들일 우려가 높다. 특히 지나치게 단순하게 역사를 단정 짓거나 재미를 추구하기 위해 과장, 왜곡된 내용은 독이 된다.

◆신화

신화는 한 민족의 집단 창작물로 선사시대의 역사를 응축한 상징성의 예술이다. 따라서 만화로 신화를 접하게 될 경우 상징의 의미는 상실한 채 올바로 이해하지 못하고 이름만을 외우는 수준에 그칠 우려가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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