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간암으로 가족을 잃고 있는 곽종금씨

"사람 죽는 게 쉬운 일이 아닌데 왜 우리 가족에게만은 그리도 쉽게 오는지…."

26년 전 간경화로 남편을 잃은 곽종금(69)씨. 그녀가 내쉬는 숨은 원망이 가득서린 한숨이었다.

사랑하는 가족들을 하나둘 떠나보낸 그 한이 주름이 되고 눈물이 되었는지 나이보다 훨씬 늙어보였다.

노동일을 했지만 샌님같이 착했던 남편을 잃은 지 100일도 채 지나지 않아 제대한 큰 아들을 잃었을 때의 그 아픔이 떠올랐는지 한동안 입을 열지 못했다.

큰 아들의 병명도 간암이었다.

"둘째 정래(44)도 간에서 혹이 발견된 거예요. 간에 붙어 내 남편과 내 아들을 앗아간 몹쓸 암덩어리가 우리 둘째까지 잡아가는 건 아닌지···."

지난해 10월 말 호흡기내과에서 폐결핵 치료를 받던 아들에게서 그 지긋지긋한 암세포가 발견된 것이다.

곽씨는 암덩어리가 둘째 아들까지 어떻게 할까봐 밤에 잠을 청하지 못한다.

남편도, 첫째 아들도 다 자신이 잠든 밤에 저세상으로 떠났기 때문이다.

병실에 누워 있는 정래씨는 노총각이다.

고3 때 세상에서 가장 믿고 의지했던 아버지를 여의고 사랑하는 형을 보냈다.

"정래가 정신을 못 차리고 미친 듯이 거리를 쏘다녔어요. 손이 야무지다고 학교에서도 칭찬받던 착한 아이였는데 그 슬픔을 이겨내지 못하고 주저앉더라구요. 그걸 바라보는 어미의 심정 어떻게 말로 다 합니까."

정래씨는 작은 회사에 다니다 보증을 잘못 서 모든 돈을 날렸다.

2년 가까이 목욕탕에서 일하다 병을 얻었다.

정래씨가 앓고 있는 '우울증'은 세상에 대한 '증오'의 한 형태인지도 모른다.

시집 간 막내 딸은 결혼한 지 몇 해 지나지 않아 백혈병으로 남편을 잃었다.

딸 또한 재생불량성 빈혈로 서울의 한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다고 한다.

곽씨는 남들에게는 그렇게 드문드문 찾아오는 '죽음'이 자신만 졸졸 따라다니는 것 같다며 연신 눈물을 흘렸다.

"우리 착한 둘째 장가보내야 내가 눈을 감지요. 심성도 바른 게 너무 일찍 많은 걸 잃었어요."

곽씨는 기초생활수급자로 한달에 20여만 원의 생활비를 지원받고 있다.

아들 병간호를 하다 짬을 내 박스와 병을 주워 조금씩 내다 판다.

무료급식소에서 끼니를 때우기도 하고 시간이 나면 집에 들러 된장 한 종지에 밥을 비벼 허기진 배를 달랜다.

한달에 10만 원하는 단칸방이지만 퇴원할 아들을 위해 틈날 때마다 청소를 한다.

정래씨의 주민등록번호에 '610228-'이라 적혀 있어 혹시 오늘이 생일이 아닌지 곽씨에게 물었다.

곽씨는 갑자기 일어나더니 '빵이라도 사야겠다'며 제과점까지 같이 가자고 했다.

주머니 속에서 꼬깃꼬깃해진 지폐를 꺼냈다.

"지지난 설에 밥이나 사먹으라고 만원을 줬더니 정래가 5천 원 하는 신발이랑 목도리를 어디서 사왔대요. 어미가 되가지고 애 생일도 못 챙겨주면 안되지요."

곽씨는 정래씨가 좋아한다며 소보로 빵을 5개나 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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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상현기자 ssang@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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