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유럽 쪽 어부들은 바다에서 정어리를 잡으면 저장탱크 속에 반드시 메기를 함께 넣는다고 한다. 메기가 정어리의 천적이기 때문이다. 비록 어부들의 그물에 잡혀 탱크에 다시 갇힌 정어리 신세지만 천적 메기를 만났으니 살기 위해 필사적일 수밖에 없다. 이점을 어부들은 노린 것이다. 어판장에서 살아있는 정어리와 죽은 정어리의 차이는 하늘과 땅이다. 이래서 자극은 좋은 것이다. 좀 강하기는 하지만 귀가 막힌 세상의 딱한 정어리들을 깨우는데 이 정도 보기쯤이야 약과다.
정열적으로 그림을 그리며 자화상을 많이 남긴 인상파의 거두 고흐. 어느 날 고갱이 고흐의 자화상 한 작품을 보면서 귀가 그려져 있지 않다고 비난하자 고흐는 칼을 들고 자신의 오른쪽 귀를 서슴없이 잘라 버린다. 이야기의 진위는 차치하고 우리는 여기서 하늘도 뚫을 듯한 예술가의 자존이 감당하지 못해 넘치는 정열과 절묘한 조화를 이뤄 세상의 정어리들을 또 한번 잠 깨워 주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우리는 귀를 늘 열어 놓고 살아가고 있다. 그렇지만 이상하게도 정작 들어야 할 것은 듣지 못하고 들을 필요도 없는 것에는 왜 그렇게 솔깃해지는지. 아니면 한 쪽 귀로 듣고는 이내 다른 쪽 귀로 흘려 버리거나 예사로 듣기 일쑤다. 들어도 불리하면 못 들은 척 하거나 이렇게 듣고는 답할 때는 전혀 엉뚱하게 저렇게 말해 분란도 일으킨다. 그러면 상대는 이를 트집잡아 또 삿대질이고 들은 척도 않는 것에 분개하고 예사로 들으면 또 업신여긴다고 통탄한다.
귀로 말미암아 벌어지는 일들이 이처럼 어디 한 두 가지랴.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오죽하면 늘 깊은 산중에서 은거생활을 했다는 귀머거리 골관자(骨冠子)가 "나는 귀가 먹었기 때문에 소부(巢父)나 허유(許由)처럼 세상 더러운 일을 듣고 맑은 물에 귀를 씻을 일이 없다'는 배짱 좋은 글을 남겼을까. 중국의 송'원대에 편찬된 '사문유취(事文類聚)'에 나오는 이야기다. 이 책은 고대로부터 행해졌던 인사(人事)의 모든 방면에 걸친 자료들을 모아 분류해 놓았다.
국정의 최고 정점인 청와대의 인사 검증시스템에 구멍이 뚫려 지금까지도 시끄럽다. 고교선후배 혹은 선거할 때 참모 혹은 운동권 등 귀에 익은 용어들이 귀가 따갑도록 귓전을 두드린다. 그럴 때마다 그물에 걸리기는커녕 용케도 피해 가는 재주가 예사롭지 않다. 그러다 총리나 장관 물색 때는 몇 차례 걸리기도 했다. 지금은 부인의 부동산 투기로 부총리가 곤욕을 치르고 있지만 청와대는 그러나 더 큰 전쟁을 치르기 위해서는 이런 것쯤이야 약과라는 표정이다. 귀가 덜 뚫린 탓일까. 솔직히 인사란 만사이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 일사에 그칠 때도 숱하다. 지나고 나면 그뿐이라는 생각들이 만연해 있고 먼저 따먹는 게 임자니까. 물론 부총리의 경우가 그렇다는 것은 아니지만.
비단 이런 것이 어디 정부 조직에서 뿐이겠는가. 어느 조직이던 어둡고 칙칙한 상하의 밀월관계는 있기 마련이다. 그렇지만 지금처럼 모든 일이 어렵기만 한 가운데 이런 관계를 지닌 기업은 결코 살아 날 수가 없다. 어느 책임경영자가 회사에 손해 끼쳐가며 달콤한 상하의 밀월관계만을 즐기겠는가마는 그러나 책임자의 귀가 열려있지 않으면 얼마든지 그럴 수가 있다. 사방이 꿀 발린 입술뿐이면 책임자도 꿀 속에 있을 수밖에.
대가리를 삶으면 귀까지 익는다질 않는가. 우리 속담이다. 가장 중요한 부분만 처리하면 나머지는 식은 죽 먹기로 따라오기 십상이란 말이다. 그렇지만 이를 역이용하면 돌이킬 수 없는 실패만 기다린다. 그만큼 어느 조직을 책임지고 있다면 대가리를 삶기 전에 자신의 귀까지 삶아져도 괜찮은가를 정확히 판가름해야 한다. 그것은 귀를 활짝 열어 놓는 일이다. 도림사(道林寺) 대숲에서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든 신라 왕궁의 복두( 頭)쟁이 절규도 들을 줄 알아야 한다.
귀 이야기가 나왔으니 망정이지 지금처럼 시끄러운 세상에서, 조직에서 가장 아름다운 귀는 과연 어떤 귀일까. 장 콕토의 시에 그 답이 있음직하다. '내 귀는 소라껍질/ 바다 소리를 그리워한다' 정말이지 그런 멋진 귀, 소라처럼 확 벌어진 그런 귀가 그립다.
김 채 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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