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일본 길들이기

올해도 3.1절을 전후해 어김없이 일장기가 불타고, 혈서가 등장했다. 일본측의 도발 때문이다. 일본 정치인들, 특히 극우 인사들은 3.1절이나 8.15 광복절 무렵이면 때맞춰 한국민을 자극하는 '망언'을 쏟아낸다. 그럴 때마다 한반도는 반일과 극일(克日)의 물결이 넘쳐난다. 이 시기만 되면 모두 애국자가 된다.

올해도 예외가 아니다. 이번엔 다카나 도시유키 주한 일본 대사가 '악역'을 맡았다. 그는 "다케시마(독도)는 일본 땅"이라고 주장해 '열혈' 애국시민들을 흥분시켰다. 이번엔 극우 정치인이 아니라 애매 모호한 수사를 즐기는 직업 외교관의 직설적 발언이란 점에서 주목된다. 더구나 올해는 한일 국교정상화 40주년이 되는 해이고 '한일 우정의 해'가 아니던가.

더욱이 최근 한류(韓流)와 '욘사마 열풍'으로 과거 어느 때보다 한일 양 국민들의 관계가 우호적으로 접근하고 있는 터에 직업 외교관이 찬물을 끼얹는 망언을 터뜨린 까닭을 도무지 알 수 없다. 단지 경제?군사적 이유만으로 독도 영유권을 주장하는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북핵 문제와 한일 FTA 타결 등 양국 간 현안이 산적해 외교적 긴장으로 빚는 손실이 크기 때문이다.

게다가 일본의 독도 영유권 주장은 국제적 관심을 끌지 못하고 큰 실익도 없는 이슈다. 그렇다면 일본의 속셈은 과연 무얼까? 영유권 분쟁을 일으켜 독도문제를 국제사법재판소에 회부하려는 이유가 먼저 거론된다. 이 경우 일본의 입장에선 '밑져봐야 본전'이고 '못 먹는 감이라도 찔러' 다른 현안에서 한국의 양보를 얻어 내 '이문'을 볼 수 있다는 것이다.

그 뿐이라면 국민적 공분(公憤)을 삭이더라도 일본의 망발을 애써 무시하는 우리 정부의 '조용한 외교적 대응'이 무조건 나쁘다고 할 수 없다. 한국이 실효적으로 독도를 지배하고 있는 데다 국제사법재판소 재판에는 우리가 응하지 않으면 회부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신용하 교수는 "국제사회는 독도가 한국 영토라는 사실을 국제법상으로 또 역사적으로 다 인정하고 있다. 오직 일본만이 승복하고 있지 않다. 우리가 적극적 대응을 한다고 해서 분쟁지가 될 위험이 전혀 없다"고 밝히고 있다. 우리 정부의 '조용한 외교'정책이 문제라는 지적이다.

일본은 역사적으로 내부의 불만을 외부로 돌리기 위해 한반도를 이용해왔다. 독도 망언은 일본 국내용 성격이 짙다는 얘기다. 1592년의 임진왜란이나 1870년대를 전후한 정한론(征韓論)역시 내부 세력간의 알력을 한반도 침략으로 해결하려는 시도였다. 현재 일본은 장기 불황으로 국내의 불만이 고조돼 있는 상황이다. 한국과 외교적 갈등을 일으켜 일본 국민들의 관심을 돌리려는 시도가 아닌지 의심되는 대목이다.

또 한일협정 문서 공개로 촉발된 한국민들의 한일협정 재협상과 배상요구를 독도 망언을 통해 희석시키려는 의도도 포함된 것으로 짐작된다. 한일관계가 냉각되면 배상요구가 숙질 수밖에 없다는 점을 노린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은 3.1절 기념사에서 독도 문제를 직접 언급하지 않고 일본의 철저한 과거사 반성과 배상만 강조했다. 야당 의원과 일부에선 이에 대해 불만을 표시했지만 독도 문제를 언급하는 것이 오히려 일본의 잔꾀에 말려드는 것이란 측면에서 적절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

최근 동북아 정세는 남북관계가 진전되고 중국이 부상하면서 일본은 그 주도권을 상당수 상실했다. 북핵 문제가 불거진 상황에서도 그렇다. 남북이 대치하면서 체제경쟁을 벌일 때와는 딴 판이다. 이에 따라 일본이 한반도에서 자국의 발언권을 높이기 위해 의도적으로 독도 분쟁을 야기하고 있는 것으로 유추할 수 있다.

특히 우려되는 문제는 일본의 보수우경화와 재무장이다. 일본은 지난해 방위비로 440억 달러를 지출했다. 세계 2~3위 군사대국인 중국, 러시아에 버금가는 수준이다. 중국은 고구려사를 자국 역사에 편입한 '동북공정(東北工程)'으로 한반도 문제에 개입하는 전략을 마련했다. 일본 역시 동북공정을 모방한 모종의 정책을 수립하고 있지 않은 지 의심된다. 독도 영유권 분쟁을 통해 중국과 마찬가지로 한반도 상황에 극적인 변화가 오는 시기에 한반도 문제에 개입하려는 흑심(黑心)이 포함됐을 가능성도 있다는 얘기다.

기우(杞憂)일 수도 있다. 하지만 누가 알겠는가. 은밀히 '임나일본공정(任那日本工程)'을 추진하고 있는지. 일본은 4세기 후반부터 6세기 중엽까지 약 200년 간 한반도 남부지역에 진출하여 백제?신라?가야를 지배했으며 그 중심기관을 가야에 두었다는 임나일본부설(任那日本府說)을 오래 전부터 교과서에 버젓이 기록하며 한일고대사를 왜곡해 왔다. 이를 기록한 '일본서기'는 일본 자국 학자들조차 인정하지 않는 황당한 역사서이다.

그렇다면 우리의 대응이 달라져야 한다. 독도문제만 해도 그렇다. 풍차(강대국)에 돈키호테처럼 맞서면 손해다. 그래도 무조건 타협하는 것은 곤란하다. 때론 경쟁하고, 때론 타협하는 외교적 전술 전략이 필요하다. 특히 영토문제에 대해선 아무리 나라의 힘이 약하더라도 수세적 대응은 곤란하다. 독도 뿐 아니라 중국의 동북공정에 맞서 간도와 북방영토에 대한 영유권 논리도 개발해 통일 이후를 대비해야 한다. 일장기를 불태우며 흥분할 게 아니라 차분한 '일본 길들이기' 전략이 필요한 때다.

조영창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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