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적당한 가격에 집 팔라" 주민 협박

재건축 빙자 민영사업자 횡포

주부 김모(44·대구시 수성구 중동)씨는 지난달 말 '동네 일대가 재개발지역으로 지정됐으니 집을 팔라'며 시행사 직원이 방문하고 간 뒤 한동안 밤잠을 설쳤다. 시행사 직원은 주민 80%의 동의만 있으면 재개발을 할 수 있으니 적당한 가격에 집을 넘기라며 거의 '협박'하다시피 매각을 종용했다는 것. 고민 끝에 김씨가 구청에 문의해 보니 재개발이나 재건축 계획은 전혀 없었다. 김씨는 "주택을 사들여 아파트 건축을 추진하는 시행업자들이 손쉽게 사업을 하려고 마치 재건축을 하는 것처럼 주민들을 속인다"며 분통을 삭이지 못했다.

단독주택 및 아파트 재건축 붐을 타고 일부 '민영주택건설' 사업자들이 재건축을 빙자해 주민들을 압박하는 사례가 잦다. '기존 토지소유자에게 우선 분양권이 있다', '동의를 안 하면 매도청구 당할 수 있다'는 등 민영사업에는 해당되지 않는 재건축 조항까지 들먹이며 관련법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주민들을 속이고 있다는 것.

대구 수성구청 관계자는 "주민 상당수가 기존 건물을 허물고 아파트를 지으면 모두 '재건축'으로 오해하고 있지만 도시 및 주거환경 정비법상 재건축과 주택법상 민영사업은 엄연히 다르다"고 지적했다.

수성구 범어동의 한 상가에서 식당을 하는 정모(38·여)씨는 "순탄하게 영업을 잘 하고 있는데 엉뚱한 재건축 소문이 돌아 점포 이전을 알아보는 등 괜스레 마음 고생만 했다"고 털어놨다.

중구청 재건축 담당은 "민영사업에도 매도청구 소송을 당할 수 있느냐는 민원인들의 문의가 많은데 이는 90% 주민 동의를 얻은 후 투기의도가 짙은 3년 미만 거주자에 대해서만 제한적으로 적용될 뿐"이라고 했다.

이처럼 원치않는 재건축으로 재산 피해를 걱정하는 주민들의 민원이 잇따르자 수성구청은 최근 수성1가 249의 139 등 4곳을 제외한 나머지 57곳은 '민영사업이 추진 중'임을 구청 홈페이지에 공지, 주의를 촉구하고 있다.

수성구청 권양웅 건축주택과장은 "현재 추진 중인 민영사업의 성사여부도 사실상 장담하기 어렵다"며 "주민들이 시행사들의 편법에 휘둘려 불리한 계약을 체결하는 일이 없도록 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재건축은 추진위원회 및 조합설립 인가 등 절차를 거치며 우선분양권, 매도청구권 조항이 있지만 민영사업의 경우는 사업시행자와 지주의 1대 1 자유계약에 따라 이뤄지고 우선분양권, 매도청구권 등의 혜택이 없다.

최병고기자 cbg@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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