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방문학 50년사를 다시 펼치게 되었다. 원죄와 이념의 붉은 페이지들이 기억의 먼지를 풀풀 일으키며 무진으로 지리산으로 정뜨러 비행장을 거쳐 이번에는 이문열의 이름을 단 군용열차를 얻어타게 되었다.
민족의 살아온 아픔이 폭삭폭삭 내려앉으며 밤새도록 얼음길, 불길이라 목놓아 불렀으나 작가는 언어의 도단을 위반하지 않는 그 특유의 행간 사이로 아슬아슬한 '그'와 졸리운 돼지 '홍'을 생산해내고 있었다.
군용열차를 타게 된 제대병 '그'와 그의 군대동기로 나오는 '홍'을 중심으로, 검은 각반이라 불리는 현역병들과 기차의 한 칸을 차지하고 있는 제대병들의 사이에 벌어진 폭력사태…. 그에 대처하는 여러 행태의 인간군상이 등장한다.
처음에는 수적으로 열세인 현역병들의 탈취와 폭력에 일방적으로 복종하던 제대병들이 걷잡을 수 없는 분노와 참담함에 휩싸였다. 이름 모를 정의로운 제대병이 등장하기까지 군사정권의 폭력성과도 닮은 듯한 현역병들의 맹목적인 폭력 앞에서 몰락한 영웅의 비참한 몰골이 있었다.
엘리트 출신이지만 '그'의 팔과 목소리와 분노는 학대받고 복종하는데 익숙한 동료들을 분기시키기에는 너무 가늘고 희며 약하다고 묘사한 부분, 그렇다면 작가와 '그'는 '홍'의 흉내를 낼 수밖에 없었을까.
이 소설의 마지막 대목을 말하지 않을 수 없겠다. "필론이 한 번은 배를 타고 여행을 했다. 배가 큰 폭풍우를 만나자 사람들은 우왕좌왕 배안은 곧 아수라장이 되었다. 울부짖는 사람, 기도하는 사람, 뗏목을 엮는 사람, 필론은 현자(賢者)인 자기가 거기서 해야 할 일을 생각해 보았다. 도무지 마땅한 것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런데 그 배 선창에는 돼지 한 마리가 사람들의 소동에는 아랑곳 없이 편안하게 잠자고 있었다. 결국 필론이 할 수 있었던 것은 그 돼지의 흉내를 내는 것뿐이었다."
그렇다면 너는 여기서 누구인가, 너는, 너라면, 너였더라면 하면서 세차게 되물어오며 아슬아슬한 무례를 범하는 작가에게 실핏줄을 일으켜세우며 뜨거운 먼지를 헤치며 따라온 독자들이여, 어떻게 대답할 것인가….
고희림 시인
▨약력
△숙명여대 정외과 졸업 △1999년 '작가세계'로 등단 △시집 '평화의 속도'(2002년)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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