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창회로 독일 예술가곡을 우리나라에 처음 소개한 한국인 성악가가 테너 권태호(1903~1972)다. 1927년 대구 최초의 독창회를 열었던 그는 1928년 서울 무대를 가졌고, 1931년에도 대구 독창회를 열어 초기 음악계를 이끌었다. 안동 출신으로 일본 유학 후 평양 숭실전문 교수를 지냈으며, 1939년 일본으로 다시 건너가 모교인 일본고등음악학교 교수를 지냈다. 해방과 더불어 귀국해 본격적인 활동을 벌인 그는 대구에서 성악'교육'작곡'국민가요 가창 활동 등으로 영향력이 컸었다.
◇ 그는 일제 치하의 긴 어둠과 해방 후 어렵던 시절에 '인간적' 유머 감각이 출중했던 기인이기도 했다. 술에 취해 통금을 넘기고 파출소 앞을 지나다 경찰이 단속하자 담에 두 팔을 벌리고 서서 "나는 빨래요"라든가 엉금엉금 기면서 "나는 개요"라 했던 재치, 미나리꽝을 안방인양 전봇대에 옷을 걸어놓고 잠잔 일화 등은 '소천(笑泉)'이라는 호를 얻게도 했다.
◇ 권태호의 업적을 기리는 기념관과 노래비 건립이 그의 고향인 안동에서 추진돼 화제다. 안동의 문화예술인들로 결성된 '향토 음악가 권태호 선생 기념관 및 노래비 건립추진위원회(위원장 정진호)는 이 사업을 위해 안동시 등 관계 기관에 지원을 요청하는 한편 건립 기금 모금에 독지가를 포함한 범시민적인 참여를 유도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모양이다.
◇ 안동의 기독교 집안에서 태어났던 그는 교회에 다니면서 음악을 가까이 할 수 있었다. 선교사 부인에게 피아노와 오르간을 배우면서부터였다. 1925년 일본고등음악학교에 입학할 때는 유례 없이 찬송가를 불러 합격한 일화도 유명하다. 음악적 재능이 워낙 뛰어나 청음 시험에 만점을 받았으며, 타고난 소리도 너무 좋았기 때문이었을 게다. 재학 중인 1927년 대구 독창회도 가히 짐작이 가는 일이다.
◇ 일본 유학 시절에 그는 '나리 나리 개나리'로 시작되는 '봄나들이'와 '눈 꽃 새' '사향가' 등을 작곡했고, 졸업 후인 1931년까지 일본에서 8회의 독창회를 가질 정도로 왕성하게 활동했다. 1946년 대구음악학원을 설립했던 그는 생전에 무려 150회의 독창회를 가졌으며, 112개 교가와 무수한 국민가요들을 남겼다. 하지만 그간 그는 잊혀져 가는 형편이었다. 이번에는 제대로 재조명되는 계기가 되기 바란다.
이태수 논설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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