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쇼윈도에 그린 봄

어스름 저녁 길을 나섰다.

오늘은 야간작업이 있는 날이다.

직업의 특성상 밤에 설치를 해야 하기에 시즌(봄·여름·가을·크리스마스) 작업이 있는 날이면 며칠 밤을 새곤 한다.

그래도 요즘은 환경 오염의 심각성이 거론되면서 산업용 폐자재 사용 자제의 목소리가 커져 스티로폼 구조물이 줄어들어 한결 간편해진 작업임은 틀림없다.

예전에는 시즌을 의미하는 이미지 구조물을 스티로폼으로 많이 조각했었다.

쇼윈도 문이 작은 탓에 조각한 구조물을 몇 등분으로 나누어 쇼윈도 안에서 재조립해야 하는 번거로움에 시간이 많이 소요되곤 했다.

쇼윈도는 단순한 흥미 위주가 아닌 함축적인 세일즈 메시지 역할을 하기에 그 시즌의 유행을 담은 구조물이 설치된다.

만드는 재료조차 그 시즌을 대변하고 있기에 재료 선택에도 한층 신중을 기해야 한다.

작업은 생각만큼 빨리 끝나지 않는다.

추울까봐 몇 겹씩 겹쳐 입었는데도 매장에는 차가운 기운이 감돌아 몸을 움츠러들게 한다.

벌써 새벽녘일까. 지하여서 밖의 사정을 알 수 없지만 쇼윈도를 쳐다보며 움직임에 흠칫 놀라 바라보다 "봄이다" 라고 외치는 사람들이 한결 부산히 움직이는 걸 보면 점차 아침이 되고 있음을 느끼게 해 준다.

그래도 예전보다는 밤 작업의 분량이 한층 줄어들었다

퍼포먼스가 한 분야로 자리 잡으면서 무언가를 행하는 부분을 보여주는 묘미가 생긴 것이다.

사다리를 설치하여 보행하는 고객들에게 사고의 위험성이 없는 일들은 이제 낮(영업시간) 동안의 작업이 가능해진 시대가 온 것이다.

내점하는 고객 모두가 상품을 사는 것이 아니라 일부는 분위기에 매료되어 기억하고 다시 찾게 하는 환경을 만드는 동기부여가 된 것이다.

무심코 길을 가다 조금의 여유를 가지고 주위를 둘러 보라. 아직도 차가운 바람이 옷깃을 여미게 만드는 계절이지만 지금 쇼윈도는 겨울의 그림자를 흔적 없이 걷어내고 따뜻한 봄의 향기가 피어있다.

롯데백화점 대구점 코디네이터 송은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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