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금융기관들은 지역 개발 및 공헌활동에 적극적이다.
아니, 적극적일 수밖에 없다.
'지역 재투자법(CRA:Community Reinvestment Act)'이 금융기관으로 하여금 지역 개발에 참가할 것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지역개발 투자 "점수화"
지역재투자법은 '지역 자금은 지역에서 활용한다'는 취지를 담은 법.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해 은행 등 금융기관에 대해 직접적인 지역개발 책임을 부담시키진 않지만 저소득계층이나 소수민족 등에 대한 차별없는 금융 서비스를 제공하도록 함으로써 지역개발을 유도하는 데 초점을 두고 있다.
지역재투자법에서 규정하는 지역개발이 정부가 재정을 투입하여 교량이나 도로를 건설한다든지, 리조트와 쇼핑센터를 건설하는 건 아니다.
저소득계층과 소수민족 등에 대한 주택 제공, 중소기업에 대한 투·융자와 금융 서비스 제공 등을 통해 소득 격차를 줄이고 차별을 해소하는 것을 의미한다.
연방정부나 지방정부가 지역개발에 직접 관여하기보다 시장원리를 도입, 금융기관이 지역개발에 참여하고 수익도 올릴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미국의 은행들은 지역재투자법에 근거해 금융감독당국으로부터 CRA 검사라고 하는 특별검사를 받는다.
은행이 지역개발에 공헌한다고 인정되는 곳에 투·융자를 실행하면 이를 점수매겨 최우수, 양호, 개선 필요, 실질적 이행 미비 등의 4단계로 평가받는다.
CRA 평가 결과 점수가 부실할 경우 지점 설치나 합병 등의 인가신청 과정에서 불이익을 받게 된다.
은행들은 영업확대 등을 위해 양호 등급 이상의 평가 결과를 얻는 것이 매우 중요하므로 지역개발에 적극 나설 수밖에 없다.
1990년부터 2004년 4월까지 약 5만4천 건에 달하는 CRA 검사 결과를 보면 최우수 16.5%, 양호 78.9%로 양호 이상은 95%에 달하고 있고 개선 필요나 실질적 이행 미비 등급은 5%도 채 되지 않는다.
◇지역개발법인이 주도
은행의 지역개발은 지역개발법인(CDC:Community Development Corporation)이라는 비영리단체에 대출하는 형태로 이뤄진다.
CDC는 지역의 유지나 주민들이 지역개발에 주민들 의견을 적극 반영하기 위해 설립한 비영리단체. 주택 건설이나 주거지역 활성화, 실업자 재교육 등 다양한 활동을 한다.
미국 연방정부나 지방정부는 1960년대까지 정부 재정을 투입, 각종 지역개발사업을 지원하였으나 재정 부담이 커지자 민간에서 가능한 것은 CDC를 통해 민간과 은행에 위임하는 형태로 넘겼다.
대신 정부는 보조금을 지원하거나 세액 공제 등의 역할에 그치게 된다.
은행은 CDC 대출로 CRA 점수를 얻게 되고 대출에 붙는 세금은 낮게 매겨진다.
연방정부 보조금 중 대표적인 것으로 1994년 클린턴 정부가 도입한 지역개발금융(CDFI)기금이 있는데 지역개발 대출을 실시하는 은행이나 CDC, 신용조합 중에서 일정한 요건을 갖춘 기관을 대상으로 지급한다.
2004년 4월 현재 679개의 CDFI가 있는데 이 중 은행 등 예금취급 금융기관은 51개 은행 정도에 불과하다.
미국 내 약 9천 개의 은행이 있다는 현실을 감안하면 은행이 '지역개발은행'으로 인정받는 것이 쉽지 않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지역개발 사업과 관련, 연방주택대부은행(FHLB)의 역할도 빼놓을 수 없다.
연방주택은행은 지역 은행을 대상으로 하는 도매금융 은행으로 매년 이익의 10%를 주택구입지원기금으로 운영, 이를 은행에 저금리로 대출하고 그 은행은 그만큼의 자금을 저금리의 주택론으로 저소득층 주민에 제공하도록 하고 있다.
지역 은행들은 주택구입지원기금을 따내기 위해 다른 은행과 치열한 경쟁을 벌일 정도다.
예를 들어 보스턴프라이빗은행은 이 기금을 활용, 1천600호의 주택 건설에 자금을 제공했고 미시간주의 연방저축은행은 이 기금으로 100호의 고령자용 주택을 지었다.
지역경제 발전과 고용 창출 등을 위해 미국 은행들이 중소기업을 위한 대출에 적극 나서도록 하는 제도도 중요하다.
금융기관들은 재무제표가 제대로 없는 중소기업이나 신용과 담보력이 없는 창업기업들에 대해 대출을 꺼리게 되므로 중소기업청(SBA)의 보증제도를 활용하도록 하고 있다.
브렌다 말린 미국은행협회 연구관은 "연방정부의 농업국 사업·산업보증제도, 주정부의 다양한 보증제도 등이 있는데 이러한 보증이 있을 경우 은행들은 자금을 제공하는 것이 보통이다.
저소득층 주민들을 고용하는 중소기업에 대출할 경우 대출한 은행은 CRA 점수를 받게 된다"고 말했다.
◇지역사회 공헌은 사회적 합의
이처럼 제도적인 면 이외에 은행이 지역사회에 공헌하는 것이 사회적 합의로 자리잡아가고 있다.
대형은행이 지역은행을 흡수 합병한 뒤 지역사회에 대한 공헌활동을 활발하게 하지 않으면 지역의 시민단체 등으로부터 비판을 받는 일도 많다.
이 때문에 합병을 선언하며 지역사회에 대한 기부, 공헌활동을 활발히 하겠다는 점을 내세우기도 한다.
뱅크오브아메리카는 북동부지역의 플리트은행을 매수할 때 매년 2천500만 달러를 기부하고 합병 이후에도 10년간 1천억 달러 규모의 자금을 투·융자 형태로 지역개발에 투자하겠다는 공약을 한 적도 있다.
김지석기자 jiseok@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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