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넘도 놓치지 말어라. 너거들 한 넘이라도 놓치면 너거덜 숟가락도 놓칠 줄 알아!" "299명 당선자 여러분들, 제발 싸우지 마세요. 머슴들이 싸움하면 그 집안 농사 누가 짓습니까?"
최근 우리 사회를 웃게 하는 사극 대사와 TV앵커 멘트의 한 대목이다. 개그가 드라마, 뉴스 영역에까지 파고들고 있다.
국내 TV방송에 앵커제가 도입된 지난 70년 이후 정형의 틀을 벗지 못하던 앵커의 멘트가 거의 개그 수준의 파격적인 진행으로 뉴스에 대한 일반인들의 통념을 깨는가 하면, 극적 긴장감이 도는 사극에서도 코미디 대사가 불쑥 튀어나와 시청자들을 즐겁게 하고 있다.
최일구 기자가 진행하는 MBC 주말 뉴스데스크와 탤런트 박철민이 조연으로 출연하는 KBS1TV 사극 '불멸의 이순신' 등이 개그의 탈 장르화를 선도하는 대표적 사례. 강한 멘트와 톡톡 튀는 진행으로 네티즌 사이에 '어록'까지 유행시켰던 MBC 최일구 앵커는 한국 방송사에 파장을 일으키면서 적지 않은 의미를 던졌다. 기존 앵커들의 스타일과 어조, 어투를 완전히 깨 논란의 대상으로까지 떠오르기도 했다.
또 KBS1TV '불멸의 이순신'에서 박철민(김완 장군 역)이 개그 캐릭터로 인기를 얻고 있다. "내가 일단 칼을 빼면 칼이 흥분을 혀", "소금도 없는데 싱거운 소리 하덜 말아라" 등 구수한 전라도 사투리에다 재치 넘치는 말투로 매회 시청자들의 웃음을 자아내면서 네티즌들은 언어의 마법사라는 의미에서 '해리포터'를 따 '김완포터'로 부를 정도.
이들의 앵커 멘트나 대사는 어록으로 정리돼 인터넷에 떠돌고 있고, 블로그나 팬카페까지 만들어지고 있다. 코미디가 과거 군사독재시대 암울한 정치·사회 현실을 비꼬거나 풍자해 서민들의 억눌린 울분을 통쾌하게 씻어내는 역할을 했다면 이제는 생활주변에 전방위적으로 자리잡아 하나의 파격적인 언어상품으로서 그 주가를 올리고 있다.
특히 코미디 프로의 유행어는 사회의 흐름을 가장 민감하게 반영한다. 최근 상종가를 치는 유행어들을 살펴보면 형식적 특징은 복고적이되 다른 형태로 기존 사회의 틀을 깨고 있다.
SBS '웃찾사'에서 엉터리 영어강좌를 하는 개그듀오 컬투의 '그때 그때 달라요'가 대표적인 케이스. "그때 그때 달라요"는 손바닥 뒤집듯 말을 바꾸는 정치인의 태도나 원칙 없이 흔들리는 정부와 우리 사회를 꼬집는 말로 '딱'이다. '생소하고 엉뚱하다'는 뜻의 "생뚱맞죠" 역시 비합리적인 일이 자주 일어나는 사회 현실을 꼬집는다. 무슨 말을 해도 말꼬리를 잡는 김형인의 "그런거야"는 상대에 대한 무조건적인 반대와 불신이 만연하는 풍조를 반영한다.
KBS2 '개그콘서트'의 인기 코너인 '깜빡 홈쇼핑'에서 안어벙(안상태)이 외치는 "마데(Made)"와 여성들을 유혹하는 "빠져듭니다"는 영어 콤플렉스에 시달리거나 외모에 자신감을 잃은 사람들에게 후련함을 안겨준다. '봉숭아 학당'의 경비아저씨 장동민에게는 세상 모든 일이 '그 까짓것'이다. 뉴스 앵커란 "그 까이꺼(그 까짓것) 2대 8 가르마 타고 대충 분위기 잡으면 되는 일"이고, 커플 매니저는 "그 까이꺼 늙은 것들 데려다가 급한 놈들부터 시집, 장가 보내면 되는 일"이다. 혹독한 경쟁사회에서 경비아저씨의 이유를 알 수 없는 낙천성과 자신감은 묘한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한다. 윤택의 "내 돈"과 전국을 기름바다로 만든 남자 리마리오의 "본능에 충실해"는 기성 세대의 허위의식을 풍자하고 있다.
장성현기자 jacksoul@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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