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마뜨료시카와 러시아

아무도 밟지 않은 새하얀 눈이 끝없이 펼쳐진 설원을 보노라면 태고적 인간의 순수성이 느껴진다.

'차이코프스키 교향곡 1번'의 제목마냥 설원 속을 마차로 달리면 절로 '겨울의 꿈'속으로 빠질 것만 같다.

한 없이 내리는 눈과 살을 에는 추위, 가난과 수많은 전쟁을 겪으며 생긴 거친 한(恨)을 예술로 승화시킨 나라가 러시아다.

오케스트라 지휘 관계로 러시아에 체류할 때가 많다.

러시아에 있다보면 이 나라 음악 특유의 깊고 어두운 아름다움을 마음으로 듣게 될 때가 많다.

가을에 떨어지는 낙엽을 바라보다 문득 차이코프스키 '현(弦)을 위한 세레나데'의 선율에 가슴이 아려오는가 하면, 겨울의 눈 내리는 볼가 강가를 걸을 땐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3번'이 애잔하게 흐느끼며 다가온다.

러시아의 자연은 음악 속에 그대로 녹아들어 있다.

많은 친구들이 서방으로 떠나고, 작품마다 검열당하고, 곡을 수정하라는 수모를 당하면서도 삶의 고뇌와 외로움, 암울한 미래를 음악으로 표현했던 쇼스타코비치. 어두우면서도 가슴 저미게 아름다운 그의 교향곡을 러시아는 온몸으로 느끼게 만든다.

사람의 본심인 '사랑'을 강조하며, 사람이 어떻게 살아야 할지 방향을 제시해준 대문호 톨스토이, 암담한 현실 속에서도 인간의 본모습을 되찾게 하는 막심 고리키의 삶의 흔적을 통해 이방인을 감동시키는 문학과 철학의 나라. 뚜껑을 열면 자꾸 나오는 마뜨료시카 인형마냥 쉽게 평가할 수 없는 나라가 러시아다.

비록 물질적으로는 가난하지만 정신적으로는 너무도 풍요로운 이 나라가 부럽다.

지휘자 노태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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