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일터] 대구 섬유 봄바람 타고 날갯짓

뼈 깎는 구조조정에 내수 회복 겹쳐

"김사장 남는 기계 없어? 동대문에서 10만 야드 주문왔는데 다른 공장들도 다 바쁘대. 결제는 빨리 해줄테니 받아줘."

성서공단에 위치한 (주)경영텍스 사장실. 오전 11시 약속을 하고 찾아갔지만 아침부터 기계를 구하려고 협력회사에 계속 전화를 거는 사장을 20분이나 기다려야 했다.

경영텍스 이명규 대표는 "2월부터 다시 경기가 살아나는 분위기예요. 동대문에서 원단이 없다고 난리치는 걸 보니 오랜만에 바쁜 일들이 많아질 것 같네요"라고 했다.

'섬유는 끝났다'라는 말이 많지만 뼈를 깎는 '구조조정'으로 최근 되살아나고 있는 내수 경기와 함께 봄바람을 맞은 기업들이 하나둘 생기고 있다.

◇지역섬유 봄바람 부나?

"올 봄에 이럴 줄 알았으면 작년에 기계 25대 팔아버린 게 아까워 죽겠네요. 그래도 시장이 어떻게 변할지 모르니 잘했는지도 모릅니다.

최근 이렇게 주문이 넘치는 것도 어찌보면 업체들이 기계를 줄인 바람에 생긴 일일지도 모르죠."

이 사장은 최근 2, 3년 동안 지역섬유는 떨어질 만큼 떨어진 경기 때문에 속앓이를 해왔다고 말했다.

주문 없다고 공장 가동을 멈출 수는 없어 공장 규모를 축소해왔다는 것.

하지만 최근 내수경기가 살아나고 동대문과 지역 공장과의 직거래가 활발해지면서 없어서 못 파는 품목도 나오고 있다.

이 회사의 주력상품인 N/C교직물(면과 나일론을 혼합해 짠 직물)의 경우 중국보다 품질이 뛰어나 중국시장에서도 인기가 높다.

"중국산 품질이 떨어지는 교직물이나 스판덱스 종류의 아이템은 국내뿐만 아니라 중국에서도 주문이 많습니다.

특히 대구는 염색, 후가공이 강해 가공처리가 끝난 원단을 동대문이나 중국으로 보내고 있죠."

이 사장은 최근 지역 패션업계와도 활발히 거래하고 있다.

지역 섬유업체들은 과거 대량생산 중심이어서 소량 주문이 대부분인 지역 패션업계와는 거래가 없었다.

수익도 크지 않고 특히 1천 야드 안팎의 소량 주문은 귀찮아서 취급하지 않았던 것.

"이제 국내섬유는 더 이상 대량생산체제를 유지하기 힘들어요. 작고 강한 기업으로 유연하게 움직이는 것이 더욱 실속있죠. 후발국가가 따라오지 못하도록 아이템 개발에 모든 힘을 쏟아야 합니다.

"

오랜만에 24시간 직기를 풀가동하며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는 이 사장 말처럼 올 봄 섬유업계에 부는 바람은 따뜻하기만 하다.

◇줄여야 살아남는다

모든 섬유기업들에게 '봄바람'이 부는 것은 아니다.

최근 각종 기관과 단체에서 조사한 경기전망지수에 따르면 타 업종에 비해 섬유는 여전히 바닥권에 머물러 있다.

최근 지역 염색공장에는 구조조정이 한창이다.

주문물량은 없고 공장가동률이 떨어지면서 인력감축, 공장폐쇄가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

서대구공단 내 ㅈ산업이 휴업상태에 있고 성서공단 내 교직물 염색업체인 ㅇ산업도 공장문을 닫아 폐업한 상태다.

업체가 어려움을 겪으면서 근로자들의 '임금체계'도 흔들리고 있다.

지난해 말 염색공단 내 ㅅ사의 경우 사측이 공장폐쇄를 하려 하자 노조가 600% 상여금을 모두 반납하는 조건으로 이를 막았다.

다른 기업들도 임금 감축이나 공장 합병 등 구조조정 중이다.

한국염색기술연구소 유종우 이사는 "2, 3년 전 이뤄진 직물공장 구조조정의 영향이 최근 염색공장에 미치고 있다"고 했다.

이런 가운데 한발 앞선 구조조정을 통해 꾸준히 성장하는 기업들도 있다.

염색공단 내 (주)삼우DFC가 그 예다.

삼우는 지난해 ERP(전사적자원관리)시스템을 도입해 관리인원 2명을 줄였다.

염료편향기 등 각종 설비를 도입해 공정관리도 대폭 간소화했다.

대량주문이 줄어들 것을 간파하고 다품종 소량생산이 가능하도록 시스템을 개체, 예전에는 취급하지 않았던 1천 야드 물량도 받고 있다.

이런 덕분에 꾸준히 주문이 들어오고 있고 최근에는 섬유업계로선 드물게 '벤처기업'으로 선정됐다.

삼우DFC 우병용 대표는 "공정 중 과다 투자된 부분을 줄이고 대신 ERP 등 소프트웨어에 투자해야 한다"라며 "중국보다 우위를 가지기 위해서 고급제품 개발은 물론 빠른 납기가 가능한 유연한 생산 시스템을 만들었다"고 했다.

한국섬유개발연구원 조상호 원장은 "중국 등 후발국가가 대량주문을 싹쓸이하는 지금 대량생산체제로는 버틸 수 없다"며 "납품단가를 높이기 위해서는 다품종·소량·고품질 생산체계로 체질개선이 시급하다"고 했다.

이재교기자 ilmare@imaeil.com사진: 섬유업체에 봄바람이 불고 있다. 다품종 체제에 교직물을 내세워 24시간 풀가동하고 있는 경영텍스의 이명규 사장. 박노익기자 noik@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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