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영(16·여)이의 얼굴은 곱지만 핏기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창백하고 파르스름했다.
유난히 큰 눈에 고운 머릿결만이 영락없는 열 여섯 살 소녀였다.
파란 입술에 뭉툭한 손끝, 부러지거나 빠진 손톱, 발톱을 애써 외면하고 싶었다.
혈액의 영양분이 몸의 구석구석으로 전달되지 못해 '청색증'까지 보이고 있는 모습을 계속 바라보기가 염치없었다.
청색증은 오래되면 손가락 끝이 곤봉 모양으로 변한다고 한다.
은영이는 '방실중격 결손(atrioventricular septal defect:AVSD)'이라는 병을 앓고 있다.
엄마 뱃속에서 은영이의 심장이 4개의 방으로 나뉠 때 이상이 생겼다.
서로 분리되어야 할 심방과 심실에 구멍이 생겼고 혈액이 이리저리 통하고 역류한다.
은영이는 폐 쪽으로 많은 혈액이 전해지다 보니 폐동맥 고혈압까지 일으켰다.
"수술 시기를 놓쳤어요. 은영이가 태어나고 6개월 뒤부터 시름시름 했는데 모른 척 했어요. 알아도 별수 없는 형편이었지요. 이렇게 힘들 줄 알았다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고쳐놓았을 건데…"
동네 작은 의원에 예방접종을 하러 갔다가 은영이의 심장이 제 기능을 못한다는 진단을 받았다.
큰 병원으로 가야했지만 가난한 형편에 엄마, 아빠는 하루살이도 힘에 겨웠다
어머니 장금선(42)씨는 그때 생각이 났는지 눈물을 흘렸다.
"은영이가 두 살 때 서울 세브란스 병원에 갔는데 가망 없다고 하더군요. 수술성공률이 5%도 안되는데 마음의 준비를 하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약도 한번 제대로 못 써보고 애를 보내는구나 생각하니 어찌나 미안하던지… "
둘째를 임신해 만삭이었던 어머니는 곧 태어날 아이와 죽어갈 자식 사이에서 많이 괴로웠다고 한다.
그리고 그때부터 무슨 수를 써서라도 애를 살려내겠다고 다짐했다.
다행이 은영이는 병이 크게 번지지 않고 커 나갔다.
초등학교는 결석 반, 출석 반으로 무사히 졸업했다.
착한 친구들이 많이 도와줬고 엄마의 그림자 역할도 컸다.
청소, 숙제, 당번 등 은영이의 일은 모조리 엄마의 몫이었다.
돈 없는 엄마로서 할 수 있는 일은 다 했다.
하지만 지난해 1월 초 은영이가 갑자기 피를 토하기 시작하더니 발작과 경련을 일으켰고 응급실로 실려갔다.
아파도 진통제를 놔주는 것이 치료의 전부였다.
"부모로서 할 수 있는 건 다 해봐야지요. 시기를 놓쳤다는 어리석음을 탓하기엔 우리 아기가 너무 곱지 않아요? 이뇨제로 소변을 내고 관장으로 변을 빼내야할 정도로 힘이 빠졌지만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고운 내 딸이에요."
은영이 치료비로 카드빚 2천만 원을 썼는데 이자가 불어 어느새 7천만 원이 됐다.
병원비는 누적돼 아버지는 결국 친구네 집에 얹혀 살고 있다.
기초생활수급자로 한 달에 50여 만 원이 수입의 전부. 노동일을 하는 아버지는 요즘 일거리가 전무해 마음만 바쁘다.
"우리 은영이는 병원놀이를 아주 좋아한답니다.
커서 간호사가 되어 아픈 사람 많이 도와주고 싶다는데 그래선지 벌써 짝사랑하는 의사선생님도 있어요. 우리 은영이 힘내게 해주세요."
담당 의사가 진료차 들렸을 때 은영이가 말했다.
"선생님, 우리 엄마 안 우는 주사 좀 놔주세요. 자꾸 우는 약을 먹는가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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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상현기자 ssang@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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