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경제칼럼-신용불량자제도 폐지가 해결책인가

여야가 공동 발의한 '신용정보의 이용 및 보호에 관한 법률 개정안'이 지난해 말 국회에서 통과됨에 따라 동법이 시행되는 올해 4월부터는 신용불량자 제도가 폐지된다.

이제까지의 신불자는 금융기관에서 발생한 채무를 갚지 못해 금융거래에 제한을 받는 개인 및 법인을 말한다.

구체적으로는 은행 카드사 등 금융기관에서 3개월 이상 연체한 금액이 30만 원을 초과하거나, 30만 원 이하 소액 연체건수가 3건 이상인 연체정보 등이 종합신용정보집중기관인 은행연합회를 통해 공유되는 이들이다.

지금껏 신불자로 등록되면 은행 카드사 등 모든 금융기관에 통보가 되어 신규 대출 및 카드 발급이 거절되고, 기존 대출의 연장 및 카드 사용이 금지되는 등 광범위한 제재를 받았다.

따라서 신불자라는 이유만으로 개인의 상환의지 및 상환능력 등을 무시한 채 획일적으로 적용되는 과도한 불이익은 신불자 제도 폐지로 다소나마 줄어들 가능성이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신불자 제도가 폐지되더라도 현행 신불자 정보에 해당되는 연체정보는 은행연합회를 통해 계속 공유될 것으로 예상된다.

따라서 금융기관들이 신불자 정보에 해당하는 연체정보를 동일한 제재기준으로 활용한다면 선진국처럼 신불자의 법적 개념이 없어지는 장점을 제외하고는 사실상 달라지는 것은 없는 셈이다

정부는 신용회복위원회, 상록수프로그램, 배드뱅크, 개인회생제도 등 신불자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고 그 결과 신불자수는 최근 감소세를 나타내고 있다.

그러나 채무조정프로그램이나 신불자의 개념 폐지로 신불자의 근본적인 문제점을 해결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채무조정 과정에서 생기는 모럴 해저드 등의 문제점들이 자유경제와 신용사회의 근간을 흔드는 결과를 불러올 수도 있다.

신불자 대책은 문제의 본질상 단기간에 해결될 수 있는 성질이 아니고 우리 경제의 기본원칙을 확립하려는 중장기적 시각에서 접근해 지속적으로 해결하려는 자세가 필요하다.

신불자 문제의 핵심은 신불자가 양산되는 불합리한 시스템이다.

1997년 말 총자산운용 가계대출 비중이 12%에 불과했던 우리나라는 2002년 말 그 비중이 30% 수준으로 증가했고, 최근 가계부채는 500조 원을 넘어서기에 이르렀다.

이렇듯 소비자 금융시장이 비약적으로 성장했음에도 불구하고 금융기관들은 대출자산의 상환가능성을 예측하는 데 필수적인 개인신용정보 인프라 부족으로 고객에 대한 충분한 정보 없이 대출결정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좀 더 설명하자면 소비자 금융시장 성장으로 경쟁이 치열해지고 이자와 수수료는 내려갔으나, 개인 신용을 평가할 수 있는 신용정보가 부족한 금융기관은 대출 시 신용도가 높은 고객인지 낮은 고객인지 분간하기 어려운 상태에서 대출결정을 하는 문제가 발생했던 것이다.

결국 부실 발생을 예방할 수 있는 시스템인 개인신용정보 인프라를 구축하지 못한 것이 신불자 문제의 핵심이었고, 이 문제를 해결해나가는 것이 신불자 문제를 풀 수 있는 근본적인 해결책이 되는 것이다.

소비자 금융시장이 발전한 영국과 미국에서는 이미 오래전부터 개인신용평가기관인 크레딧 뷰로(Credit Bureau: CB)를 통해 모든 기관들이 연체정보 등 불량정보는 물론 대출상환내역 및 신용카드결제내역 등과 같은 우량정보를 적극적으로 공유함으로써 신용위험을 적절히 관리해왔다.

우리나라도 현재 기존 CB사들이 대규모 투자와 개인신용정보 수집을 통해 다양한 개인신용정보 인프라를 구축하고 있기는 하지만, 우량정보의 공유 시 자기 고객정보를 빼앗긴다고 인식하는 대형 금융기관들의 참여 부족으로 아직까지는 정보수집 대상 및 범위가 제한적인 실정이다.

더군다나 이들 대형 금융기관들이 정보 우월성을 바탕으로 은행 카드사 중심의 새로운 CB를 만들려고 하고 있으므로 은행, 카드, 캐피탈, 보험, 저축은행, 유통, 통신 및 대부업 등 모든 기관의 정보가 광범위하게 공유되는 개인신용정보 인프라 구축은 상당히 지연될 전망이다.

지난 수년간 발생한 신불자 문제의 근본 해결을 위한 개인신용정보 인프라 구축은 모든 기관이 참여하는 완전한 정보 공유가 최우선적으로 고려되어야만 한다.

정부는 우량정보를 포함한 개인신용정보 인프라를 조기에 구축할 수 있도록 영미식의 규제 완화와 자유로운 정보 이용의 촉진이 가능한 정책 및 입법 방안들을 마련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또 대형 금융기관들을 비롯한 시장 참여자는 조그마한 자신의 이익에 얽매이지 말고 모든 기관의 정보가 상호호혜주의 원칙 하에 자율적으로 공유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CB에 참여해야 한다.

CB를 통한 완전한 정보공유가 이뤄질 때 모든 금융기관들이 현재의 고객보다 훨씬 더 많은 우량고객들을 확보할 수 있다는 것은 선진 CB들을 통해서 확인된 사실이다.

거시적으로 볼 때 현재의 신불자 문제를 비롯한 가계 부채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한국 경제가 침체국면에서 얼마나 빨리 회복하느냐를 결정짓는 중요한 변수가 될 것이다.

모든 기관의 정보가 광범위하게 공유되는 개인신용정보 인프라 구축을 기초로 한 CB 활성화를 통해 신불자 문제의 근원적인 해결이 이뤄지기를 기대한다.

박상태(한국신용평가정보주식회사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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