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닷없는 경칩 폭설이었다. 부산에선 101년 만에 큰 눈이 내렸고, 울진(86cm),영덕(67cm) 등지에서도 기상관측 이래 가장 많은 적설량을 보였다.
봄눈이 잦아지고 있다. 2002년부터 내리 3월에 눈이 왔고, 폭설은 100년 만의 큰 눈이라던 작년에 이어 두 해째 계속됐다. 지난해도 경칩 때 대설이 쏟아져 경부고속도로가 마비되는 혼란을 겪었다. 겨울과 봄의 교차 시기라 대기가 불안정한 탓에 폭설이 된다고 한다. 긴 겨울잠에서 깬 개구리가 온 천지가 하얗게 변한 데 놀라 왕방울 눈이 더 튀어나왔을지도 모를 일이다.
설해(雪害)가 만만찮았다. 경북 동해안만 해도 60여 개 학교가 휴교했고, 울진의 100여 개 마을은 눈 속에 갇혔다. 농촌의 수많은 비닐하우스들도 내려앉아 농심을 멍들게 하고 있다.
'과유불급'(過猶不及:지나침은 모자람만 못하다)이라더니 적당히만 내렸으면 오죽 좋았을까. 마른 대지가 목을 축이고, 파란 보리밭이 하얀 이불을 덮을 정도로만 왔다면 좋았을 텐데... 동심은 예나 마찬가지라 아이들은 추운 줄도 모르고 환호성을 내지르며 뛰어다니더니 어느새 곳곳에 오종종한 눈사람들을 만들어 두었다.
눈은 사람 마음을 설레게 하는 묘한 마력이 있다. 더구나 매화 꽃잎처럼 흩날리는 봄눈엔 제아무리 팍팍한 가슴도 동하지 않을 재간이 없다. 조선시대 평양기생으로 알려진 매화의 시조 한 수는 봄눈에 싱숭생숭해진 심정을 잘 드러내 준다. '매화 옛 등걸에 봄철이 돌아오니/ 옛 피던 가지에 핌 직도 하다마는/ 춘설(春雪)이 난분분(亂紛紛)하니 필동말동 하여라.'
이번 폭설로 다리가 푹푹 빠지는 산촌에선 먹이를 찾지 못한 산짐승들이 산 아래로 내려오는 일이 잦은가 보다. 예전엔 눈 내린 후 참새잡이나 산토끼잡이를 즐기는 사람들도 많았지만 야생동물 보호법이 발효된 지금은 아예 삼갈 일이다.
봄눈은 겨울눈과 달라 금방 녹는다. 경칩날의 폭설도 멀리 산봉우리의 잔설과 산비탈 응달의 반점 같은 눈조각들만이 그 흔적을 말해준다. 눈 소식이 더 있을 모양이다. 이젠 그저 봄눈답게 나풀나풀 내렸으면...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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