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은 한바탕 눈으로 몸서리를 치고 물러났다. 날이 풀리기를 손꼽아 기다렸던 여행계획. 온 가족이 함께 경주남산으로 답사여행을 떠나보자. 금오봉(468m)과 고위봉(494m)을 아울러서 불리는 남산은 동서로 4㎞, 남북으로 10㎞를 품고 있는 아담한 산. 산봉우리와 골짜기마다 신라 흥망성쇠의 역사와 유물'유적을 간직해 노천박물관으로 불린다. 그러면서도 산행이 힘들지 않고 지루하지도 않아 가족답사로도 안성맞춤인 곳이다.
남산엔 산 전체에 유물'유적이 널려 있고 답사코스도 많아 어느 쪽을 기점으로 잡아야 할지 고민이다. 신라문화유산해설사로 남산의 문화유산을 전문적으로 해설해오고 있는 이성훈(62'신라시니어클럽 회장)씨는 "남산이 처음이고 아이들과 함께하는 답사라면 삼릉에서 시작해 석조여래좌상-마애관음보살상-선각육존불-선각여래좌상-보물 제666호 석불좌상-상선암-마애석가여래좌상-금오산 정상- 옥수골마애대불을 거쳐 삼릉으로 되돌아오는 코스가 좋다"고 소개했다. 삼릉 쪽은 남산의 수많은 계곡 중에서도 불교유물, 특히 불상이 가장 많은 곳이기 때문이다. 3시간이면 충분하다.
삼릉에서 상선암 표지를 따라 오르다보면 이내 석조여래좌상을 만난다. 머리가 없이 몸통뿐인 불상이다. 하긴 남산엔 온전한 모습을 갖춘 불상이 드물다니 그리 놀랄 일도 아닌 듯하다. 이 불상은 옷자락의 선이 뚜렷해 우리나라 복식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됐다. 오른쪽 큰길을 두고 왼쪽 오솔길을 따라 20여m를 오르면 마애관음보살상이다. 되돌아내려오다 왼쪽으로 난 오솔길을 5분여 따라가면 선각육존불. 석조여래좌상 앞에서 큰길을 따라 올라와도 마주친다.
자연그대로인 큰 암벽을 화폭으로 삼아 단번에 그림을 그리듯 불상을 새겼다. 울퉁불퉁한 바위 선과 섞여 마음으로 봐야 선명하다. 오른쪽은 석가삼존불이고 왼쪽은 아미타삼존불이다. 한참을 보고 있으면 마치 탱화를 보듯 불상의 형상이 점점 선명해진다. 탑의 옥개석으로 쓰인 듯한 돌도 바위 아래 아무렇게나 놓여 있다. 발아래 돌 하나하나가 다 문화재다.
육존불을 왼쪽으로 해 바위 위를 오른다. 바위 위에는 홈이 패어 있다. 물기가 육존불로 흘러내리지 못하게 하기 위함이다. 이곳에서도 큰길 대신 바위 뒤로 난 오솔길을 따른다. 7, 8분을 오르면 못생긴 선각여래좌상이 반긴다. 코 있는 부분만 도톰하게 되어있고 밑으로 내려가면서 점차 선으로 처리해 부처가 바위 속으로 들어가는 모습이다. 문화유산해설사인 이성훈씨는 "이곳이야말로 부처가 계실 만한 최적지"라고 소개했다. 그때서야 뒤돌아보니 한눈에 들어오는 경치가 대단하다.
다시 오른쪽으로 조금만 가면 보물로 지정된 석불좌상이 나온다. 육존불에서 큰길인 등산로를 따라가면 선각여래좌상을 지나치고 이곳서 만난다. 손상된 얼굴부분을 시멘트로 복원해 어색하다. 손수건으로 복원된 부분을 가리자 그제서야 본래의 석불 이미지가 드러난다. 광배로 쓰였던 바위는 뒤쪽에 아무렇게나 떨어져 부서진 상태로 있다. 얼굴처럼 복원할 바에야 차라리 무너진 상태 그대로 두는 게 훨씬 나을 듯하다.
상선암에 올라 잠시 숨을 돌리고 5분여 산길을 오르면 마애석가여래좌상 앞에 이른다. 역시 얼굴은 바위에서 반쯤 튀어나왔고 밑으로 갈수록 선으로 그려 몸은 바위 속에 있다. 막 바위에서 부처가 나오는 모습이다. 신라인들은 바위가 곧 부처임을 믿었으리라. 이곳서 바둑바위를 거쳐 금오봉까지는 25분 정도 거리다.
시간과 체력의 여유가 있다면 금오봉에서 용장골로 하산하는 코스도 괜찮다. 삼릉 쪽에는 불상 등 유적이 많다면 용장골은 유적이 제일 많은 곳이다. 삼릉에서 금오봉을 거쳐 용장골로 하산하면 점심시간을 포함해 5시간 정도 걸린다.
금오봉에서 내려와 임도를 따라가면 용장사지 안내판이 나온다. 이곳서 임도를 따라 5분여 더 가면 연꽃 무늬가 선명한 삼화령 대연화좌대가 있다. 불상 없이 좌대만 남은 이곳에 앉으면 용장골의 풍경이 그림처럼 펼쳐진다.
매월당 김시습이 금오신화를 쓰며 머물던 용장사지를 향해 내려가다보면 삼층석탑, 마애여래좌상, 삼륜대석불좌상을 잇따라 만난다. 삼층석탑은 특이하게도 바위를 다듬어 탑의 하층기단으로 삼았다. 탑과 바위, 산이 하나다. 용장사 터에서 올려다본 삼층석탑은 장엄하다. 탑 위로 펼쳐지는 파란하늘은 곧 신라의 하늘이다.
용장사 터는 옛 영화를 상징하는 안내판만 덩그러니 세워져 조용하다. 찬바람이 불어오는 절터에 자리잡은 두기의 무덤이 쓸쓸함을 더해준다. 산대나무 터널을 지나 용장계곡을 통해 하산한다. 골이 지루할 만큼 길다.
글·박운석기자 stoneax@imaeil.com
사진·박노익기자 noik@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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