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법의학교실 사무실에 생명보험회사 직원이 찾아 왔다.
사연은 이러했다.
70대 노인이 사망했는데 그 노인 앞으로 거액의 보험이 가입되어 있었다.
여러 보험사에서 받게 될 보험금의 총액은 무려 120여억 원. 노인의 아들이 여러 회사에 보험을 가입했는데 한 달 납부액이 700여만 원이라고 했다.
그런데 아들은 일정한 직업도 없은 데다 빚만 수백억 원에 이른다는 것이다.
이런 형편에 어떻게 거액의 보험에 가입했을까.
특히 노인은 보험금을 두 번째 납부한 달에 특별한 질병을 앓은 적이 없는데도 갑자기 사망했다.
이런 이유 때문에 보험사들은 노인의 사망에 의혹을 품게 된 것이다.
하지만 노인의 사망 원인이 명확하지 않은데도 불구하고 부검은 실시되지 않았다.
당시 공중보건의는 검안(檢案)을 했지만 시신에 특별한 외상이 보이지 않았기 때문에 급성 심근경색증으로 추정된다는 시체검안서를 작성해 줘 병사로 처리됐다.
그리고 시신은 화장됐다.
의혹을 풀 수 있는 결정적인 증거가 한 줌의 재로 사라진 것이다.
결국 보험회사는 거액의 보험금을 내놓을 수밖에 없었다.
몇 년 전 아들이 나이 많은 아버지를 독살한 사건이 있었다.
동네 의사가 검안을 했는데 노령이며, 겉으로 드러나는 외상이 전혀 없고, 주무시다가 갑자기 숨졌다는 아들의 말에 따라 노환으로 사망한 것으로 생각해 시체검안서를 작성해 줬다.
아들은 장례를 치른 뒤 양심의 가책을 느껴 경찰에 범행을 털어놨다.
이 경우에는 시체를 화장하지 않았기 때문에 발굴한 시신을 부검, 독극물을 증명해 아들을 처벌할 수 있었다.
아들이 자수했기에 망정이지 과연 우리 주변에서 묻힌 범죄는 없을까.
독일의 경우에는 병원이 아닌 곳에서 사망해 검안을 하는 경우와 병원에서 사망했더라도 명백한 병사가 아닌 모든 경우에는 의과대 법의학교실 전문의가 반드시 2차 검안을 실시하도록 돼 있다.
또 명백한 병사로 임상 의사가 진단한 경우에도 독일의 화장법은 화장하기 전에 반드시 법의학 전문의가 2차 검안을 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 나라에 화장법이 만들어진 이후 법의학 전문가가 범죄로 인한 죽음을 찾아내는 사례가 종종 생겨나고 있다.
또 스코틀랜드에서도 변사체로 검시를 한 뒤에는 반드시 법의 전문의가 발부한 사망증명서와 지방 검사가 발부하는 시신의 매장이나 화장을 허락하는 증명서를 첨부해야 한다.
선진국들은 단 한 건의 억울한 죽음도 없도록 철저히 감시를 하고 있지만 과연 우리는 그렇게 하고 있는가?
채종민(경북대 의대 법의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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