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우리나라에선 赤十字社마저 썩나

전쟁터나 각종 재난의 현장에서 펄럭이는 적십자기는 절망 속에서 피어나는 한 줄기 사랑이자 희망이다. 전쟁의 참화를 겪은 우리나라에서 공이 컸던 까닭에 적십자사는 공공기관과 비슷한 위상을 유지해왔다. 전 국민은 몇 년 전까지만 해도 회원이든 아니든 적십자 회비를 조세처럼 꼬박꼬박 내어왔고 누구도 거기에 큰 이의를 달지 않았다. 그리고 헌혈은 당연히 적십자사가 독점적으로 하는 일, 적십자사가 해야 하는 일로 여겨왔다.

그런 적십자사에서 국민의 사랑과 신뢰를 짓밟는 일들이 심심찮게 드러나고 있어 걱정스럽다. 최근 검찰에 적발된 헌혈 장비 납품과 관련한 비리는 실망을 넘어 분노를 느끼게 한다. 검찰 조사 결과 적십자사 고위 간부들이 헌혈 장비 납품 업체와 제약회사 등으로부터 회식비'비품비 명목으로 금품을 받고 관사와 해외 여행까지 제공받는 등 최근 4년 간 19억여 원 상당의 접대와 향응을 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국민은 사회에 만연한 고질적인 부패 방식이 적십자사에도 깊숙이 뿌리 박고 있었다는 사실에 놀라고 비리 규모에 경악한다. 적십자사는 지난해에는 감염 혈액을 병원 제약사 등에 공급해 국민적 불안을 야기했다. 관계자들의 직무 소홀로 야기된 '있어서 안될 일'이었지만 그 때만도 국민은 일손 부족, 장비 부족 등의 피치 못할 이유까지 고려해서 이해하려고 했다.

그러나 이번 사건은 용납할 수 없는 사안이다. 비리에 쌓인 금액만큼 봉사 활동에 썼더라면 얼마나 많은 불우한 사람들을 도울 수 있었겠는가. 이러고도 어린이들의 코 묻은 돈까지 적십자 회비로 내달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적십자사는 국민 앞에 뼈를 깎는 자성과 새 출발의 모습을 보이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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