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일진회의 '먹이'…어느 고1생 이야기

구타·협박에 118만원 '상납'…정신치료 필요

올해 고등학교에 입학한 강모(15)군은 하루하루가 지옥이었다. 중학교 3학년 시절부터 자신을 괴롭히던 '일진회'가 졸업 뒤에도 끈질기게 따라붙었기 때문.

강군이 일진회의 타깃에 걸려든 것은 지난해 9월. 아버지가 자영업을 해 가정형편이 괜찮은데다 학교 성적은 눈에 뜨일 만큼 뛰어나지 않아 일진회가 '먹이'로 삼는 '평범한 대상'에 걸려들었다. 처음 구타와 협박에 못 이겨 한 차례 돈을 갖다주면서 '정기 상납'의 길에 들어섰다. 매번 20만~50만 원씩. 상납을 위해 강군은 아버지의 지갑을 뒤졌다. 이들을 피해 일찍 귀가하는 날이면 어김없이 휴대전화와 집 전화로 협박 전화가 걸려왔다. "돈을 가져오지 않으면 끌어다 묻어버리겠다"고 윽박질렀다.

지난달 27일 오후 1시쯤 대구 달서구 한 아파트단지 인근 공원에서 강군을 붙잡은 옛 일진회 멤버들은 강군을 엎드리게 한 뒤 미리 준비한 밀대자루로 엉덩이를 수십차례 때렸다. 그리고 50만 원을 가져오라고 시켰다. 결국 주머니에서 자주 돈이 없어지는 것을 이상하게 여긴 아버지가 강군을 추궁했고, 급기야 반년 넘게 아들이 시달림을 받아온 사실을 알아냈다. 엉덩이가 온통 시퍼런 것을 보고 온몸이 떨린 아버지는 경찰에 도움을 요청했다.

나중에 드러난 사실이지만 강군은 쉬는 시간에도 교실에 있질 못했다. 일진회의 괴롭힘이 두려웠다. 쉬는 시간마다 교무실로 피해 시간을 보냈다. 강군에 대한 정신과 검진결과 '최소 3개월 이상 정신적 공황상태에 놓여 있었으며, 이후 장기적인 정신과 치료가 필요하다'는 진단이 나왔다.

대구경찰청 광역수사대는 11일 강군을 상습 폭행하고 17차례에 걸쳐 118만 원을 뺏은 혐의로 안모(18)군과 ㅈ공고 1년 김모(15)군 등 2명을 구속하고, ㄷ고 1년 권모(15)군 등 3명을 불구속 입건했다. 이들은 그다지 뉘우치는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피해액에 대해 "그 보다 많을 것"이라는 말도 경찰관에게 태연히 뱉었다.

이들은 강군이 부모나 교사에게 피해를 알리지 못하게 철저한 '교육'을 시켰다. "만에 하나 이 사실을 알리면 더 쓴 맛을 보여주겠다. 몸에 멍이 든 것도 친구들끼리 '때리기 놀이'를 하다 다친 것이라고 변명하라"고 시켰고, 겁에 질린 강군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경찰은 신학기가 시작한 이달부터 4일부터 4월 말까지 학교폭력 특별단속을 벌이고 있다. 경찰은 선처를 약속하며 일진회 멤버들에게 '자신신고'를 종용하고 있지만 어느정도 실효를 거둘지 의문이다.

대구 모중학교 학생부장 장모(37) 교사는 "피해 학생의 부모가 경찰에 신고하지 않는 이상 교사가 제자를 신고할 수도 없는 노릇 아니냐"며 "가해자는 신고 못할 것을 알고, 피해자는 도움받지 못할 것을 알기 때문에 괴롭힘이 아무리 심해도 학교측은 알 수가 없다"고 했다.

경찰도 학교폭력 등 교내 문제를 맡은 '담당 경찰관제'를 시행하고 있지만 현재로선 유명무실한 상황이다. 경찰이 학교에 상주할 수도 없는 상황이고, 또 폭력문제가 불거져도 학교 측은 사태가 커지는 것을 꺼려 담당 경찰관에게 알리는 경우가 거의 없기 때문이다.

강희락 대구경찰청장은 "현행 '담당 경찰관' 제도를 활성화시키고 자신신고 기간 중에는 가해학생에 대한 처벌보다는 선도와 교육, 상담을 우선하며 피해학생 역시 철저한 비밀 보장과 함께 보호자가 원할 경우 타학교 전학이나 의료지원, 손해배상도 가능토록 하겠다"고 했다. 한편 대구경찰청은 지난해 학교 폭력과 관련해 27명을 구속하고 170명을 불구속 입건했다. 이 중 일진회 등 폭력서클 3개에서 6명을 구속하고 14명을 입건했다.

김수용기자 ksy@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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