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최초의 서양화가 춘곡(春谷) 고희동(高羲東)이 1886년 3월 11일 서울에서 태어났다. 한국미술의 선구자였던 그는 '살아서는 고전이 되고 죽어서는 역사가 되었다'라는 추앙을 받기도 했다.
고희동은 1899년 한성법어(法語)학교 시절 불어교사였던 레미옹의 유화그림을 보고 서양미술에 강한 호기심을 느꼈다. 졸업 후 취미로 서화를 시작한 그는 1908년 한국 최초의 미술유학생으로 일본의 도쿄미술학교에서 서양화를 공부했다. 고희동은 귀국한 뒤 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다 1924년부터는 다시 전통회화로 복귀했다.
한국에 서양화가 도입되던 초기이다 보니 그에게는 재미있는 일화가 많이 전해진다. 그가 야외스케치를 하기 위해 화구박스를 들고 가면 사람들은 엿장수가 왔다고 따라 다녔다고 한다. 유화물감이 꼭 고약이나 닭똥 같다는 말도 함께 들었다. 그러면서도 당시 사람들은 처음 접해보는 서양화의 기법과 재료로 그려진 그림에 큰 관심을 드러내기도 했다.
우리나라에 서양화의 기반을 닦은 그였지만, 서화에 일본풍을 적극 수용하고 일제가 뿌리내리려 했던 자유주의적 요소, 이기주의적 경향 추구 등으로 친일 논란이 비판의 대상에 오르고 있어 씁쓸한 기운을 남기고 있다.
▲1954년 정비석 '자유부인' 선정성 논란 시작 ▲1970년 비틀스 마지막 앨범 'Let it be' 발매 ▲1985년 미하일 고르바초프, 소련공산당 서기장에 취임 ▲1986년 로마제국 수립(BC 753년 4월 21일) 100만 일 기념식.
조문호기자 news119@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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