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잖아도 일본의 노골적인 망언으로 울분이 가득한데, '식민지의 적자들'(도서출판 푸른역사) 을 읽는 독자들의 마음은 더욱 불편해진다. 일제 식민지 시대에서 현재에 이르기까지, 우리의 부끄러운 자화상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은 이광수와 윤치호가 식민지의 적자가 되고자 하는 열망으로 수많은 식민지 조선의 청년들을 죽음의 전장으로 내몰았던 과거 역사를 잊지 말 것을 주문하고 있다. 그리고 개인의 사적 이익을 공익으로 치환하는 과거 역사가 현재도 여전히 되풀이되고 있으며, 이런 개인의 사적 이익을 공익으로 치환해 온 지배층들의 이데올로기가 과거 청산을 가로막는 주된 이유가 되고 있음을 날카롭게 예시한다.
역사학자인 저자 공임순은 먼저 '이순신'이라는 역사적 인물의 영웅성은 폭력 정권의 비합법성과 친일 행적을 은폐하기 위한 도구였음을 폭로하면서 역사적 인물의 영웅 만들기를 분명한 정치적인 관점에서 읽고 있다. 동시에 지배층들의 무치(無恥)와 위선(僞善)에 대해 끝까지 책임을 물으며 다시는 이 땅에서 억울하게 죽어갈 희생자가 없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이 책은 또 김옥균의 형상을 통해 친일과 반공이 서로 짝패임을 비판적으로 검토하고 있다. 해방 후 미군정은 남한 인구의 40%가 사회주의자라는 놀라운 결과를 발표했다. 그러나 반공을 국시로 삼은 미군정과 이승만 정권의 폭력과 억압을 동반한 적색분자 만들기로 이들은 민족의 타자로 축출됐다는 것이다.
결국, 한국전쟁이 이들 지배층들에게 최후의 승리를 안겨줬고, 친일파들은 재빨리 반공투사로 거듭나는 한국 근(현)대사의 굴절된 이면을 낳았다고 저자는 역설한다. 과거 청산이 될 수 없는 것은 이처럼 친일과 반공이 짝패였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국부로 자처하던 이승만은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서울 시민들을 향해 안심하고 생업에 종사하라는 말을 되풀이한 채 제일 먼저 서울을 도망치듯 빠져나갔다. 정부를 믿고 서울에 잔류했던 시민들은 미군과 함께 입성한 이승만 정권에 의해 빨갱이로 처벌되는 이중의 고통과 좌절을 겪었다.
이 책은 이런 과거의 역사적 사실을 정확하게 바라보고 성찰하기를, 그것만이 시민(민중)이 생존할 수 있는 방법임을 일관되게 주장한다. 그리고 누군가를 희생자로 밀어내며 내가 잘 사는 사회가 아니라, 최소한의 부끄러움을 느끼며 사는 인간다운 사회를 꿈꾼다.
저자는 황진이, 이순신, 명성황후, 대원군, 김옥균 등 역사적인 인물의 영웅성에 대한 비판적인 접근을 시도하고 있다. 기생 황진이는 정에 굶주리고 사랑을 갈구하는 조선민족에게 사랑과 자비를 베풀어야 한다는 식민지 시대 일본 민속학자인 야나기 무네요시의 용법을 고스란히 반복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김훈의 지독한 파워 엘리트주의는 이순신을 찬양했던 박정희와 닮았고, 일본 고이즈미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와 드라마 '태조왕건' 열풍도 서로 다른 듯 닮아 있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또 이라크파병을 보며 민족과 국가를 방패로 식민 본국의 적자가 되고자 했던 식민지 조선의 지식인들과 지금의 지식인들의 동일한 심리구조를 지적한다.
이 책은 이렇게 역사가 이야기일 뿐만 아니라 선택과 배제를 둘러싼 첨예한 기억의 투쟁이자 정치의 현장임을 긴장감있게 서술하고 있다. 많은 자료와 이론을 횡단하며 쓴 글들이 감춰진 역사의 밑바닥까지 들여다보고, 그것과의 치열한 대결을 통해 당대의 모순을 짚어내고자 한다. 그것만이 역사 담론을 연구하는 연구자의 진정한 책무라는 것이 저자의 생각이다.
조향래기자 swordjo@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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