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생활하던 동료가 어느날 갑자기 숨져도 슬픔이나 가슴 치는 애통함은 그저 사치일 뿐 무덤덤하기만한 일상(日常)은 계속되고 있는 곳, 바로 문경병원 진폐병동이다.
이곳엔 젊어서는 지하 수천m 캄캄한 탄광 막장에서, 나이가 들어서는 회색빛 병동에서, 이래저래 바깥 세상과는 등진 채 살아가는 퇴역 광원들이 모여 살고 있다.
진폐병동에는 현재 광원 257명이 진폐 및 규폐증세로 입원해 있다.
또 다른 29명은 통원치료를 받으며 하루하루를 지낸다.
이들은 가족과 떨어져 병원에서 생활하면서 치료를 받고 있는데 외출은 1주일에 한번 목욕·이발 때만 다녀오고 가급적 바깥출입은 않고 있는 실정이다.
입원 환자들은 산업재해보상보험요양기준법에 의한 등급에 따라 매월 120만 원~170만 원 사이의 휴역금(休力金)과 병원침대 보상비 명목의 돈을 근로복지공단으로부터 지급받고 있다.
그러나 석탄가루가 폐에 달라붙어 작은 일에도 숨이 차 힘들어 하는 진폐증 광원들은 직장생활이나 노동은 전혀 할 수 없는 입장이어서 가족들은 생활에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사단법인 전국진폐재해자협회 문경병원지회 황종식(65) 회장은 "진폐증은 세계적으로도 완치사례가 없는 불치병으로 오늘 아무렇지도 않다가 다음날 갑자기 죽는다"며 "속은 썩었어도 겉은 멀쩡해 우스갯소리로 '영국 신사 병'으로 부른다" 고 했다.
황 회장은 자신의 책상 서랍 속에 보관하고 있던 400여 개의 도장을 내보이며 슬퍼했다.
진폐치료가 지난 86년쯤부터 시작된 이후 사망한 동료들이 생전에 지원금을 받기위해 사용하던 도장들이었다.
진폐 환자들의 식사는 병동으로 배달이 됐는데 생배추무침, 단무지 등 3가지 반찬에 닭개장국을 곁들였다.
식사 후 오후 시간대 병동은 활기가 넘쳐났다.
환자들은 각자의 취미에 따라 서예, 목공예, 짚 공예, 바둑, 장기, 병풍제작, 비디오 감상, 당구 등 다양한 활동을 했다.
임상태(66)씨는 이곳에서 4년째 서예 삼매에 빠져 지내는데 그동안 전국대회에서도 수차례나 입선해 지금은 어엿한 서예가로 이름을 날리고 있는데 권대진(67·전직 교사)씨가 서예지도를 하고 있다.
특히 진폐병동은 매년 한차례씩 작품전시회를 열고 있는데 전시회땐 많은 가족과 시민들이 병원을 찾아 격려를 아끼지 않고 있다.
진폐환자들은 매년 10월5일이면 문경시 가은읍 왕릉리 옛 은성광업소 터인 문경 석탄박물관 위령각에서 먼저 간 408명 광원의 위패를 모시고 제례를 올리고 있다.
진폐산재환자 요양병원은 경북에만 문경·상주·영덕·영주·예천 등 6곳이 있고 전국에는 36곳이 있다.
입원환자는 3천200여 명이고 등록환자는 7만2천 명인 것으로 집계되고 있다.
문경병원 진폐병동 박무웅(62) 총무는 "한겨울에도 찜통같은 막장에서 속옷은 물론 장화 속까지 땀이 찰 정도로 목숨을 걸고 일해왔는데 이젠 어디서 어떤 희망을 찾아야 할 지 모르겠다"고 했다.
진폐증은 공기나 접촉에 의해 옮겨지는 전염병도 아니다.
진폐환자들은 따스한 이웃들의 관심을 기다리고 있다.
문경· 장영화기자 yhjang@imaeil.com사진: 진폐병동 황종식 지회장은 자신이 보관하고 있던 먼저 간 입원 광원들의 도장을 내보이며 슬퍼했다.(사진 오른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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