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서울로 간 경상도음식-'안동국시'

"경상도 음식은 짜고 맵다. 한 마디로 맛이 없다."

지금까지 서울사람들이 느끼고 있는 경상도 음식에 대한 평가가 바뀌고 있는가! 경상도 음식들이 서울로 진출하고 있다.

'안동찜닭'이 태풍처럼 한 차례 프랜차이즈 시장을 휩쓸고 가는가 하면 간장양념의 '교촌치킨'이 뒤를 잇고 있다. 포항사람들이 즐겨먹던 '영일만 과메기'도 서울사람들의 겨울철 별미자리를 확고하게 굳혔다. 과메기 판매로 인한 경제적 파급효과가 1조 원으로 추정될 정도로 과메기는 '히트'를 쳤다. 영덕막회도 서울 영등포는 물론 종로 한복판에서도 찾을 수 있을 만큼 대중화에 성공했다.

그런가 하면 부산과 대구에서 즐겨먹던 돼지국밥 따로국밥도 서울시내 곳곳에 전문점으로 자리를 잡는 등 푸대접받던 경상도 음식들이 하나둘 서울사람들 입맛을 파고들고 있다. 그러나 이런 경상도 음식들의 주된 소비층이 경상도 출신이라는 점에서 경상도 음식이 서울에서 아직은 '찬밥신세'라는 지적도 적잖다.

◇안동국시

그런 가운데 안동국시만은 예외다. 안동 의성 등 경북북부지방에서 밀가루와 날콩가루를 섞어 반죽을 하고 맑은 육수에 애호박을 송송 썰어 끓여내놓던 음식이 이제는 '안동국시'라는 브랜드로 이름을 날리고 있다. 보통 칼국수 한 그릇에 3천~4천 원을 넘지 않는 데 반해 서울에서 팔리는 안동국시는 한 그릇에 5천~8천 원. 고급 국수로 통한다.

현재 서울 시내에서 '안동국시'를 상호로 내걸고 성업 중인 음식점만 10여 개. 그것도 종로와 마포, 압구정동, 여의도 대치동 등 서울 시내 주요 지역에서 영업하고 있다. 점심시간에는 예약을 하지 않으면 자리가 없을 정도인 곳도 여러 곳이다.

'안동국시'는 이제 '전주비빔밥'정도의 음식위상을 차지하게 된 셈이다. 안동국시가 국수가 아니라 국시로 불리게 된 것은 밀가루가 아니라 '밀가리'로 만들었기 때문이라는 정도의 유래(?)는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 됐다. 한술 더 떠 '밀가루'와 '밀가리'의 차이도 공지의 사실이다. '밀가루는 봉지에 담아 팔지만 밀가리는 봉다리에 넣어갖고 판다'는 것쯤은 서울사람도 다 안다.

맑은 고기육수로 끓인 담백하고 심심한 맛 외에는 별다른 특징 없는 '안동국시'가 이처럼 10여년 만에 서울사람들의 인기를 얻은 비결은 무엇일까? '서울로 상경한' 안동국시는 여느 경상도 음식처럼 맵거나 짜지 않고 콩가루도 적게 넣는 등 서울사람들 입맛을 고려한 점이 두드러진다. 그래서 서울에서 먹는 안동국시는 '진짜' 안동국시와 다소 다르다. 콩가루가 많이 들어가면 서울사람들이 싫어해 적게 넣었고 멸치육수가 아니라 고기를 삶은 육수를 쓴다.

안동국시집마다 약속이나 한 듯이 "집에서 먹듯이 정성껏 끓여냈다"는 점도 인기비결의 하나다. 서울시내에서 소문난 안동국시집으로는 마포 공덕동에 자리잡은 안동국시와 종로1가 센트럴빌딩 지하의 안동국시가 꼽힌다. 김영삼 전 대통령시절 청와대에서 칼국수를 끓여내기 전부터 안동국시집을 운영한 김남숙 할머니는 강남에서 '소호정'이라는 상호로 안동국시를 끓여내다가 장남인 임동열씨와 딸에게 물려줬다고 한다.

이들 안동국시집 메뉴는 비슷하다. 국수 종류는 안동국시와 건진국시가 전부고 삶은 문어와 수육, 녹두전을 곁들인다. 특히 옛날 경북북부지방의 잔칫날이나 제사상에서나 볼 수 있던 삶은 참문어는 다른 지방 음식점에서는 맛볼 수 없는 특별메뉴다. 안동국시가 서울에서 이나마 대접을 받게 된 것은 프랜차이즈를 통한 대중화보다는 맛을 통해 저변을 넓혔기 때문이라는 지적도 있다.

◇'마포 안동국시'

1994년 마포의 신용보증기금 뒤편, 작은 분식집에서 안동국시를 끓여내기 시작한 조차향(63·여)씨는 이제 서울에서 가장 유명한 안동국시집 사장이 됐다. 분식집 국시가 맛있다고 소문나자 조씨는 96년 현재의 서울 서부지방법원 건너편 1층 한옥을 개조해 '안동국시'라는 상호로 본격적으로 안동국시를 내놓기 시작했다. 그 곳이 재개발되면서 3년 전 현재의 공덕동 2층 양옥집을 개조, 운치 있는 음식점으로 만들었다. 마포 안동국시가 유명세를 탄 것은 사실 안동국시가 서울에서 자리잡기 시작한 기간과 비슷한 셈이다.

이곳은 '국수가 일품'이라는 소문이 입소문을 타면서 각계인사들이 단골로 드나들 정도로 유명해졌다. 최근 물러난 이헌재 전 경제부총리는 낙마 며칠 전에도 들렀을 정도다. 가장 자랑하는 메뉴는 역시 안동국시다. 밀가루에 콩가루를 넣어 반죽하지만 많이 넣지는 않는다. 그래서 면발이 쫄깃쫄깃하고 구수하다. 국시 맛을 결정하는 것은 육수다. 조씨는 엄선한 한우 양지만으로 푹 끓여 만든 육수로 국물을 만든다고 했다. 국시 국물이 담백하면서도 시원한 것이 특징이다.

김치와 부추전, 콩나물과 무채, 나물무침 등 7가지 반찬은 인공조미료를 전혀 쓰지 않아 인기다. 그래선지 마포 안동국시는 YWCA로부터 '환경사랑음식점'으로 지정되기도 했다.

'음식 맛은 손 맛'이라고 하듯 조씨의 음식솜씨는 친정어머니로부터 물려받은 것이다. 영천이 고향인 조씨의 친정어머니는 경주 최씨의 종녀로 음식솜씨가 대단했다고 한다. 집안 제사만 12차례였다고 하니 그럴 법도 하다는 생각이다.

조씨가 안동국시를 끓여내게 된 것은 사실 남편 사업이 어려움을 겪었기 때문이다. 교편을 잡던 아버지를 따라 안동에서 살면서 먹던 안동국시맛을 그대로 살려 내놓는다는 게 오늘의 안동국시가 된 것이다. 조씨는 '경상도 음식은 맛이 없다'는 일반 통념을 반박했다. "경상도 음식에도 반상의 구분이 있었는데다 잔치나 큰일을 치를 때 내놓던 경상도 음식은 궁중음식과 별반 차이가 없었다"는 주장이다.

조씨는 국수 이외에 한정식 코스요리를 통한 국수집의 고급화도 꾀하고 있다. 안동국시 외에는 특별한 찬거리가 없다는 지적에 갈비구이와 황태구이, 수육, 냉채, 녹두전, 생선조림 등 갖가지 일품요리들을 묶어 코스요리를 개발해 고급 한정식을 내놓기 시작했다.

◇'센트럴빌딩 안동국시'

이곳은 다른 안동국시집보다 서민적이다. 주변 오피스빌딩의 직장인들이 점심, 저녁 할 것 없이 자주 찾는다. 그렇다고 국시가 맛 없거나 깨끗하지 못하다는 뜻은 아니다. 오히려 가볍게 소주 한 잔 하면서 안동국시맛을 보기에 적당한 곳이다. 점심시간에는 예약을 하지 않으면 한참 동안이나 줄을 서서 차례를 기다려야 하는 곳도 이곳이다. 무엇보다 종로 한복판에 위치해 있다는 점 때문에 안동국시맛을 아는 사람뿐 아니라 젊은 사람들이 유독 많이 찾는 곳이기도 하다.

안동국시를 끓여내는 윤경혜(58·여)씨는 '예천댁'으로 통한다. 고향인 예천에서 어릴 적부터 끓여먹던 국시가 이 집 국시맛의 원천이다. 사골국물을 끓이고 끓인 뒤 걸러낸 최대한 깨끗한 국물을 쓰는 것이 이 집 국시국물 맛이다. 국시맛도 일품이지만 이 집의 대표메뉴는 문어다. 매일 새벽 윤씨가 직접 노량진수산시장에서 생물로 사오는 동해산 문어는 최상품이다. 윤씨가 직접 삶아야만 쫄깃한 문어맛이 난다고 한다. 문어뿐 아니라 깻잎과 부추김치 역시 윤씨가 직접 간을 한다. 음식맛을 처음처럼 유지하기 위해서는 깻잎은 물론 부추김치에 이르기까지 반찬 하나하나 모두 자신이 직접 간을 봐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국수반죽도 공장에 맡기지 않고 가게에서 한다. 매일 내놓는 국수는 매일 반죽해서 곧바로 내놓기 때문에 다른 데에 맡길 수가 없다는 것이다. 겨울철에는 메밀묵까지 직접 만들어 내놓는다. 그래서 명절 때 외에는 쉴 수가 없다고 즐거운 푸념이다.

서명수기자 diderot@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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