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주말에세이-새 움 트는 노랑빛 작은 기쁨들

IMF때보다 더 살기 힘들다고 난리다.

일부러야 어렵겠지만 퍼진 김에 폐차시켰다.

급할 땐 택시를 이용하면 큰 불편이야 있겠나 생각하면서, 필요에 따라 당분간 집사람의 차를 번갈아 몰기로 했다.

아직 도마뱀 꼬리만큼 붙어 있는 겨울이다

이십년 가까이 시도 때도 없이 휙휙 몰고 다니던 젖은 습관에 더군다나 바람 찬 날이면 옷깃을 세우고 버스 정류장에 서성이는 심사가 영 편치 않다.

어쩌다가 결행이라도 하면 삼십 분 기다리는 건 일도 아니다.

퇴근길에 좀 태워 가면 좋겠는데 아침에 입씨름 좀 했다고 삐쳐 차 몰고 먼저 들어간 집사람이 못내 괘씸할 때도 있다.

하지만 안으로 곰삭여야지 별 수 있나, 끝내 내 풀에 죽고 만다.

버스 기다림쯤은 여유롭게 체득하면서 도란도란 살아가는 우리네 이웃들이 떠오른다.

이해관계가 뾰루지처럼 곤두서면 시민의 발을 동동 묶어 버리는 버스 노사분규도 떠오른다.

그런 상념 사이로 버스가 굴러 온다.

세상사 이러쿵저러쿵 말은 쉽지만 무나 두부 자르듯 싹둑 자를 일 별로 없다.

늘상 못 살겠다 말들은 그렇게 하면서도 잘들 살아간다.

금방 차 없애고는 아무 것도 못 할 것 같더니만 그도 날이 가니 시나브로 적응이 돼 간다.

기다림의 인내도 물처럼 차오르고 핸들을 장악하는 날이면 타성으로 잊고 잃어버렸던 자가운전의 편함도 만끽한다.

그뿐이랴, 이따금 생각잖은 보너스도 있다.

지난주 어느 날 남문시장 앞을 지나는 버스 안에는 나 말고도 몇 사람이 더 서 있었다.

승강장에 버스가 멈추자 올라오는 백발의 할머니가 있었다.

바로 앞의 할머니가 얼른 일어서서 내 옆으로 비켜섰다.

흰 머리카락이 적을 뿐 아무리 보아도 자리를 양보한 할머니가 연장자로 보였다.

참을 수 없는 궁금증으로 "할머니, 연세가 어떻게 되세요?" "일흔 일곱이오." "할머니 연세가 훨씬 많은 것 같은데요?" "아무렴 어때, 내가 더 건강한 것 같은데요 뭐." 살아오면서 이런 감동이 기억의 저 편 어디에서 아스라이 떠오를 것도 같다.

수면 위에 피는 안개 속 반사되는 햇살 보는 순백의 잔잔한 즐거움의 아침이다.

친구와 낫게 술 한잔 하고 돌아서는 저녁, 버스 정류장 위로 솟은 가로수 은행가지에는 휑하니 차가운 바람이 스치고 있었다.

하루의 벌이가 괜찮았는지 주름살 제법 깔린 아주머니가 밝은 표정으로 옆 아주머니에게 내민다.

"이 껌 하나 드실래요?" "아니, 아니에요." 하루라는 삶의 무게가 배어나는 손이 내게로 향했다.

"아저씨, 하나 드릴까요." "예? 예···"

소박한 그 웃음과 마음에 무안함을 얹을 수 없어 얼떨결에 하나를 받았다.

버스가 흔들리는 동안 그 아주머니는 피곤도 잊은 듯 이렇게 행상을 해서 두 아들을 대학 공부시켰다는 둥, 두 아들 모두 졸업 후 번듯이 대기업에 취업하여 다닌다는 둥, 자식들이 장사를 만류해도 의지할 생각 없고 이젠 재미로 장사한다는 둥 지금껏 들어줄 사람 만나지 못해 꾹꾹 밟아가며 참기라도 한 것처럼 내가 내릴 때까지 자신의 생활과 삶을 신명나게 풀어 나갔다.

껌 하나에 따사로이 살아난 시간과 공간이다.

다리 위에 서면, 아지랑이같이 봄기운의 색조가 저만큼 신천 갯가 빈 가지에 웅얼웅얼 어리고 있다.

처음 보는 사람들끼리 스치고 부대끼다 그냥 널려진 일상을 서로 공유하며 '살짝 비켜섬'으로 마음과 웃음을 나눌 수 있는, 명·채도 높은 새 움 트는 '노랑' 빛 작은 기쁨의 기억들이다.남해진 도심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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