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알콩달콩 우리 부부 사는 법-하찬수·김순주씨 부부

"동네 사람들은 잘 몰라요. 우리 부부가 험악한(?) 고산 등반하는 취미를 가지고 있는 줄은…."

대구시 북구 구암동 집에서 만난 하찬수(37'와이엠모터스 대리), 김순주(36)씨 부부는 처음 보기에 그저 평범해 보였다. 남편은 자동차 세일즈 영업을 하고 아내는 학습지 눈높이 교사로 맞벌이를 하며 유치원생인 두 아들을 둔 가정. 그런데 이들 부부가 아무나 꿈도 못 꾸는 에베레스트, 매킨리 같은 고산 등반을 하는 사람들이라니 놀랍기만 하다.

"시댁과 친정은 모두 시골에 있어 아이들을 맡길 데도 없어요. 남편이 새벽에 운동하면 저는 저녁에 운동하고, 고산 등반을 할 때도 결혼해 함께 가기가 힘들어요."

집 부근에 있는 함지산은 이들 부부가 운동하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곳이다. 야트막한 산은 언덕 달리기로 심폐력과 근력을 강화하는 데 안성맞춤이기 때문. 고산에 올라가는 근육을 단련하기 위해서는 평지나 러닝머신보다 언덕 달리기로 1시간 정도 운동하는 것이 적당하단다.

"수천m 높은 산에서 머리가 쪼개질 것처럼 두통이 심해지고 고소증(高所症)을 겪다 보면 포기하고 싶은 심정이 많이 들지요. 언덕 달리기를 하며 멈추고 싶은 것을 참고 뛰는 게 체력 단련이 되는 것은 물론 정신적인 트레이닝도 됩니다."

이들 부부의 전력은 화려하다. 아내 김씨는 1993년 한국 최초의 여성 에베레스트 원정대로 8천848m 정상에 올라 화제를 모았던 장본인. 97년엔 북미 최고봉 매킨리(6천194m), 아프리카 최고봉 킬리만자로(5천895m) 정상에도 오른 맹렬 여성 산악인이다. 지난해에는 아줌마의 몸으로 세계 7대륙 최고봉에 속하는 엘부르즈(5천642m, 유럽) 정상도 밟았다. 남편 하씨는 91년부터 북미 고봉인 매킨리를 비롯한 히말라야 고봉인 안나푸르나1, 가셰르브룸, 탈레이사가를 등정한 맹렬 산악인. 97년 김씨와 함께 매킨리봉과 초모랑마(에베레스트) 등정에 함께 나섰던 그는 99년 7월 결혼식을 올리자마자 칸첸중가(8천586m) 원정을 위해 네팔로 바로 떠날 정도였다.

"보통 아내 같았다면 남편이 고산 등반을 가는 걸 말렸을 거예요. 눈사태 등 사고로 죽는 사람이 너무 많으니 위험하다고 걱정할 수밖에 없지요. 하지만, 저도 고산 등반이 어떻다는 걸 알고 가고 싶은 마음이 절절하니까 남편을 보낼 수 있는 것이겠죠."

그러고 보니 이들 부부가 알고 있는 산악인 중에 고산 등반을 떠났다가 운명을 달리한 이가 10명이 넘는단다. 사고 수습을 위해 현지로 가곤 한다는 하씨는 "무수한 사고에도 불구하고 산악인들이 고산 등반을 가는 것은 등반이 하나의 인생처럼 잃어버린 자아를 찾고 자신이 한 단계 성장하는 것을 느끼게 되는 소중한 경험이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도시문명의 산물인 휴대전화, 텔레비전, 인터넷이 없는 세상. 이빨 빠진 얼굴로 해맑게 웃는 아이들과 노인들. 처음에 저렇게 더러운 곳에서 어떻게 생활하나 싶던 것이 하루, 이틀, 열흘이 지나고 나면 집으로 돌아가 각박한 세상에서 어떻게 사나 하는 심정으로 바뀐단다. "물질이나 문명이 행복을 가늠하는 척도가 될 수 없다는 걸 많이 느끼게 됩니다. 산에서는 스스로 부끄러워질 때가 많아요."

김씨의 말처럼 이들 부부는 가식적으로 겉으로 그럴 듯하게 보이는 데 크게 신경을 쓰지 않는다. 집안도 큰 꾸밈없이 소박하고 에베레스트 정상에서 깃발을 꽂으며 찍은 사진 한 장 벽에 걸려 있지 않으니….

"지난해 7월 엘부르즈를 등정하면서 자신감이 많이 생겼어요. 원래 산을 잘 타는 건 체질이라고 생각했거든요. 산을 오르면서 힘들다는 느낌을 받은 적이 없었는데 애 둘 낳고 나니 너무 다르더군요."

김씨는 함지산과 헬스장에서 미리 몸을 단련했지만 고산에 오르니 숨이 차고 다리가 아프고 너무 힘들었다고 한다. 그러나 하루가 지나자 고소증에 서서히 적응이 되고 자신이 왜 고산 등반을 했었는지를 몸으로 느끼게 되더란다.

"땅의 기운은 참 좋은 것 같아요. 어떨 때는 약보다 낫다는 생각까지 들거든요." 이 부부는 틈날 때마다 영웅(6), 혜성(4) 두 아이를 산으로 데리고 다닌다. 생후 100일 때부터 산에서 텐트 치고 잠자는 것에 익숙해 있는 아이들은 다리가 아프더라도 꾹 참고 끝까지 제 힘으로 산에 오른단다.

"20대 혈기 왕성할 때는 남자로 태어나 양으로 100일을 사는 것보다 호랑이의 하루 삶을 사는 게 낫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나이가 들면서 등산은 깊은 취미이지, 목숨을 걸고 할 일은 아니라는 마음이 듭니다. 정상에 오르는 것도 중요하지만 돌아올 때의 안전을 생각하며 오래 등반을 즐기는 것이 중요하니까요."

어려움을 참으며 좌절하지 않고 계속 시도할 수 있는 도전정신을 배우게 된 것이 고산 등반의 큰 자산이라고 말하는 하씨를 보면서 "우리 남편 정말 말 잘 하지요."라며 활짝 웃는 김씨. 늙을 때까지 산을 오르는 것이 꿈이라는 이들 부부의 모습은 마냥 행복해 보였다.

김영수기자 stella@imaeil.com

사진: 집 부근 함지산을 오르고 있는 하찬수· 김순주씨 부부. 고산 등반에 필요한 근육 단력을 위해 언덕 달리기를 하기에 함지산은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곳이다. 이채근기자 mincho@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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