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방폐장' 유치, 그 뜨거운 현장을 가다

'뜨거운 감자' 방폐장(중·저준위 방사성 폐기물 처분장)이 경북을 달구고 있다. 취재팀이 10일부터 4일간 포항, 영덕, 울진 등 방폐장 유치 움직임이 있는 지역을 취재한 결과 이 지역의 지자체 및 주민들은 달라진 정부의 자세에 기대를 걸고 있고, 무엇보다 낙후한 지역 경제를 일으켜 세워야 한다는 절박함을 토로하고 있었다.

영덕군 방폐장 유치위원회 이선우 위원장은 "특별지원금 3천억 원, 한국수력원자력 본사 이전, 연간 50억 원 이상의 방사성 폐기물 반입수수료 지원, 중저준위 처분시설만 설치 등은 과거에도 거의 있었다. 단지 구두 약속이 아니라 법으로 못박았다는 게 믿음을 준다"며 "방폐장의 안정성과 정부의 추가지원책을 기대하는 만큼 무너진 영덕 경제를 살리기 위해 방폐장 유치에 나섰다"고 했다.

경북에서 처음으로 방폐장 유치를 천명한 정장식 포항시장은 "포항에 방폐장을 유치하면 법제화된 지원뿐 아니라 영일만 신항만 개발 확대, R&D 특구 지정, 국도 7호선 조기 확장, 양성자 가속기 유치 등 파급 효과도 엄청나다"며 "포항, 경주, 영덕, 울진 등 환동해권 공동 발전을 위해서라도 방폐장을 포항에 유치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 시장은 "경북은 지난 정권은 물론 현 정권에서조차 국책사업 소외지로 전락했다"며 "모처럼 온 지역 발전 기회를 결코 놓쳐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울진발전포럼 황지성 대표는 "더 위험한 원전을 껴안고 있으면서 덜 위험한 방폐장 유치를 외면할 이유가 없다"며 "한반도의 오지이면서 뚜렷한 발전대책이 없는 울진은 방폐장 유치를 통해 살 길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과거 방폐장 후보지 중 한 곳이었던 영덕군 남정면의 최규한 유치위원장의 경우 지난 89년과 2003년 두 차례의 유치 논쟁 때 대표적 반대파였지만 태도를 바꿨다. 최 위원장은 "당시 중·저준위의 안정성을 알고 있었지만 정부의 거짓말 때문에 방폐장 유치를 반대했다"고 말했다.

최 위원장은 "정부가 방폐장의 안정성과 지역 발전에 대한 이해를 지역주민들에게 구하고, 심판을 맡긴다면 예전처럼 무턱댄 반대는 없을 것"이라며 "찬성이든 반대든 주민투표 결과에 승복할 것"이라고 말했다.반면 동해안을 더욱 위험에 빠트린다는 주장이 유치 찬성론에 맞서고 있다. 포항환경운동연합 박창호 운영위원장은 "방폐장은 경제적 실익보다는 주민 분열이라는 폐해가 더 심각하다"며 유치를 반대했다.

영근회(영덕을 사랑하는 모임) 김병강 전 회장은 "원전이 있는 울진과 경주에 이어 영덕, 포항 등지에 방폐장이 올 경우 동해안은 핵벨트화된다"며 "경제 파급 효과도 원전이 들어선 울진의 경우 지금껏 수조 원이 투자됐지만 인구는 줄고 지역경제는 쪼그라들었다"고 했다.

울진사회정책연구소 황천호 소장은 "정부는 방폐장 특별법에 중·저준위와 고준위 시설 분리를 명시하고 있지만 정권이 바뀌면 법 개정을 통해 고준위도 슬쩍 끼워 넣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며 "지난 20년간의 정부 원전 지원책 상당수가 불이행된 것만 봐도 알 수 있다"고 말했다.

취재 기간 만난 포항, 울진, 영덕의 상당수 주민들은 과거처럼 찬반 흑백논리로 '우리끼리 싸움만해서는 안 된다'면서 진지한 모습이다.주민들은 "방폐장의 허실을 객관적으로 분석한 뒤 안정성이 보장된 방폐장이 지역 발전에 큰 도움이 된다면 방폐장 유치 지역은 물론 국책사업 소외지인 경북 전체의 발전을 위해서라도 유치 경쟁에 나설 필요도 있다"고 말했다. 지난 11일 출범한 방폐장 부지선정위원회는 조만간 방폐장 자율유치 신청 공고를 낸 뒤 주민설명회 및 공청회, 주민 여론조사와 주민투표를 거쳐 7월까지 부지를 최종 선정한다.방폐장 유치 경쟁은 현재 전북, 강원, 경북의 3파전 양상을 보이고 있다.

특별취재팀=정치2부 최재왕 기자, 기획탐사팀 이종규·이상준 기자, 포항·임성남, 영덕·최윤채, 울진·황이주 기자

사진:울진 원전의 중·저준위 폐기물 임시 저장고. 2008년이면 국내 원전 중 가장 먼저 포화상태에 이른다. 방폐장 유치 지역의 '+알파'도 이 때문이다. 이상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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