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3040광장-코드 넓히기

최근 2, 3년 사이 우리 사회에서 자주 회자되는 단어 중의 하나가 '코드'일 것이다.

우리 사회는 서로 성향이 다른 사람들을 이해하거나 포용하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

어쩌면 열린 토론문화가 자리 잡고 서로 의견이 다른 사람들과 공존하려는 노력이 부족했던 데 그 원인이 될 수 있다.

필자가 하는 공부는 고고학이다.

고고학은 원래 옛것에 대한 학문이어서 각 시대별 자료를 해석하고 이해하는 데 있어서 옛 사람들의 시대별, 지역별, 상황별 코드를 파악하지 않으면 아니 된다.

그런데 옛 사람들의 코드를 알아내고 이해하는 것은 아주 어려운 작업이다.

그러나 고고학의 경우는 인류학이나 민속학 또는 사회학과는 달리 유물의 의미나 코드가 무엇인지를 물어볼 사람들이 다 죽어 없어졌다.

따라서 옛 사람들에게 직접 물어보지도 못하면서 그들의 코드를 이해하려고 하다 보니 열린 마음을 가지지 않으면 아니 되게 되었다.

불과 100년 전의 구한말의 우리 선조들도 우리의 선조이지만 지금의 우리와는 현저히 다른 사람들이다.

사고방식이 그러하고 가치관이 그러하다.

머리칼과 몸의 털을 비롯한 우리 몸 모두는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것이어서 이를 더럽히거나 망가트리지 않는 것이 효(孝)의 근본이라고 믿었다.

1895년 11월 15일 고종이 단발을 하고 '단발령'을 내리자 의병운동이 일어나고 유생들의 격렬한 저항이 잇따랐다.

1895년 의병을 일으키게 된 것은 명성황후 시해라는 국민의 자존심을 상하게 하는 변란도 있었으나 어쩌면 단발령이 더 큰 원인이었을지 모른다.

왜냐하면 주자학적 예론과 같은 세계관 속에서는 상투를 자르는 것은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에는 절대로 용납할 수 없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1866년 천주교 서책의 소각과 '오가작통법' 강화방침을 전국에 시달하고 프랑스 신부를 비롯한 천주도교를 처형하고 척화비를 세우고 한 일은 나름대로 민족을 지키고자 몸부림 친 일이라고 할 수도 있으나 지금 생각하면 120년 전후의 우리 조상이 한 일이라고는 여겨지지 않는다.

아마 고종 황제가 지금의 변화된 우리나라와 청년들의 노란 머리와 복장, 그리고 노래를 듣게 된다면 고종황제는 이게 내가 다스리던 나라와 그 백성이 맞느냐고 되물을 정도라고 생각한다.

이렇듯 불과 100년 전과 오늘날은 이렇듯 크게 다르고 코드가 맞지 않는다.

불과 100년 전의 사람을 이해하기에도 이렇듯 큰 시각차이가 있고 코드를 맞추기 어려운데 1천 년, 2천 년, 아니 5천 년 이전도 더 되는 시대의 사람들을 이해하고 그들의 코드를 복원하고자 하는 고고학자는 옛 사람들을 여러 각도에서 이해하려는 자세를 갖지 않으면 한 발도 앞으로 내디딜 수 없게 된다.

그리고 한쪽의 입장이나 자기만의 견해를 가지고 유물을 해석해서는 올바른 연구를 할 수 없다.

그렇게 되면 '사이비 고대심리학자'라는 누명을 쓰게 될 수도 있다.

따라서 신뢰성 있고 타당성 있는 과거문화의 복원과 이해를 위해서는 다양한 각도에서 옛 사람들의 유물을 분석하고 이해해 보려는 열린 연구자세가 필요하고 옛 사람들과 코드를 맞추고자 부단히 노력해야 한다.

현재 우리나라는 정치·사회·경제·문화 방면의 나아갈 길과 전략에 대하여 여러 집단 사이에 다양한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그러나 서로 상대의 주장을 경청하고 이해하면서 타협의 접점을 찾으려고 하기보다는 그 코드가 어떤 코드이건 서로 간에 코드가 맞지 않으면 서로를 적대시하거나 무시하는 경향이 있다.

서로 마음을 열고 타협의 접점을 찾기 위해 노력해야 할 일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모두 어떤 사안에 대한 각각의 입장과 상관없이 우리 사회에서 평생을 함께하며 공존해야 할 동반자이기 때문이다.

영국에서 올리버 크롬멜의 시민혁명과 왕정복고 과정에서 영국인들이 느꼈던 것은 폭력과 혁명보다는 대화와 공존이었고 그것이 현대 영국 의회민주주의의 토대가 되었다.

우리도 영국 민주주의의 경험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

이제 우리 모두 눈을 크게 뜨고 길고 긴 역사의 시간 속에서 시간과 공간을 공유한 귀한 인연을 가진 평생을 이 땅에서 함께 살아갈 동반자로서 생각하며 서로의 코드를 넓히며 이해하고 타협과 대화의 접점을 찾아보도록 노력하면 어떨까 한다.

김권구 계명대 교수·한국문화정보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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