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계산동에서-육아가 어찌 여성만의 몫이랴

"한판 하고 오는 길이에요."

아침 출근 길 가쁜 숨을 몰아쉬며 사무실로 들어선 동료 여직원이 힘없이 내뱉는 말은 근심으로 가득 차 보였다.

학교에도, 학원에도 가지 않겠다며 길거리에서 울고불고 난리를 피우는 아이를 억지로 떠밀어 학교로 보내고 출근하는 마음이 어디 가벼울 리 있을까.

"퇴근할 때까지 아이를 혼자 집에 내버려 둘 수도 없고 직장을 그만 둘 수도 없으니 학교 수업이 끝나면 또 학원 몇 군데로 아이를 보낼 수밖에 없어요."

어디 이 아이뿐이랴. 순수하게 교육을 위해서가 아니라 부모가 퇴근하기를 기다리며 학원 버스를 타고 이곳저곳 옮겨다니며 시간을 때워야(?) 하는 아이가.

초등학교에 다니는 아이들도 이럴진대 부모의 손길이 필요한 갓난아기는 더 대책이 없다.

출산 휴가에 들어간 직장 여성들은 출근 날짜가 다가올수록 머리가 지끈지끈 아파 오는 걸 경험하곤 한다.

당장 아이를 맡길 데가 마땅찮기 때문이다.

한 직장여성은 "한 달의 반은 시어머니가, 나머지 반은 친정어머니가 아기를 봐주고 계신다"며 "우리 아기 너무 불쌍하죠"하고 답답해한다.

하지만 친구를 만나거나 해야 할 일을 어쩔 수 없이 아이를 보지 않는 기간으로 몰아 해야 하는 어머니에게 무조건 아이를 떠맡길 수도 없는 노릇이란다.

출가한 딸을 넷 둔 한 60대 여성은 몸은 힘들지만 일을 계속하는 게 낫다고 생각한단다.

행여나 집에서 쉬고 있으면 딸들이 아이 봐달라고 부탁할 게 뻔하기 때문이다.

주변 친구들도 "행여나 외손자 하나라도 봐줄 생각하지 마라"며 "잘못하다간 딸들이 한꺼번에 맡기는 외손자들 때문에 허리가 휠 것"이라고 걱정한단다.

나이 든 여성들도 손자 본다고 고생하기보다는 자기 생활을 즐기기 원하는 요즘 세태를 보여주는 단면이 아닐 수 없다.

세월이 많이 변했어도 육아 부담은 여전히 여성들이 사회생활을 하는 데 큰 걸림돌로 남아있다.

통계청 사회통계조사보고서를 보면 여성들이 생각하는 취업 장애 요인은 불평등한 근로 여건이나 사회적 편견, 가사 분담 등을 제치고 육아 부담이 가장 큰 것으로 꼽힌다.

갈수록 낮아지는 출산율을 걱정해 정부에서 여러 가지 출산 장려책을 내놓고 아이를 많이 낳은 가정의 사례가 언론에 보도되지만, 이를 보는 여성들의 모습은 별 감흥이 없어 보인다.

자아 성취를 위해, 그리고 맞벌이를 하지 않으면 경제적으로 힘든 세상에서 육아 부담이 개별 가정의 문제로 여겨져 사회적으로 해결하려는 노력이 이루어지지 않는 한 출산율을 높이자는 목소리는 공허할 뿐이다.

21세기 디지털 정보화시대는 '여성성(女性性)'이 빛을 발하는 시기라고 한다.

감성적이고 관계 지향적인 여성의 장점이 사회 발전의 원동력이 될 수 있도록 자녀 양육의 책임을 가족, 사회, 국가로 전환하려는 보육정책이 절실하다.

그래도 과거 가부장적인 아버지들과 달리 아이를 돌보는 고충(?)을 분담하려는 젊은 아버지들이 늘고 있는 점은 부모가 함께 양육을 책임진다는 측면에서도 다행이 아닐 수 없다.

김영수 스포츠생활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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