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진회에 한번 찍힌 뒤로는 어느 곳도 안전하지 않았습니다. 학교는 물론이고 집에도 갈 수 없었습니다. 보복이 두려워 말도 못 꺼냈고요."
일진회의 괴롭힘을 피해 가출한(본지 15일자 35면) ㄱ중 2년 박모(12)군은 16일 경찰 조사에서 잔뜩 주눅이 든 목소리로 지난 1년간의 고통스런 시간을 털어놓았다.
박군은 지난해 입학할 때부터 일진회의 눈에 띄었다. "화장실에서 일진들과 어깨가 부딪쳤다는 이유로 학교 뒤편에 끌려가 마구 맞았습니다. 우리 학교 일진들과 어울려 다니던 인근 ㅂ중학교 일진들도 저를 괴롭혔고, 용돈 때문에 도둑질까지 시켰습니다."
일진들의 괴롭힘이 극에 달한 것은 지난달. 학기 중엔 수시로 몇 천원씩을 갈취하던 일진들이 성에 차지 않았던지 박군을 열흘 넘게 일진회 멤버의 집에 가둬두고 도둑질을 시켰다. 박군은 주로 PC방 손님들의 옷을 몰래 뒤져 지갑을 훔치는 방법으로 같은 학교 3학년 일진인 김모군에게 상납했다. 도둑질을 할 때면 항상 감시하는 일진이 따라붙어 도망가지 못하게 했고, 돈을 구해오지 못하면 발길질이 날아왔다. 박군은 하루에 2∼5차례 상납을 했고, 많을 때는 8만∼9만 원을 일진들 손에 쥐여줬다.
박군은 지난달 27일 찜질방에 자러가는 틈을 타 감시자를 따돌리고 간신히 도망쳐 나올 수 있었다. 하지만, 보복이 두려워 집에도, 학교에도 갈 수 없었다. 박군은 낮에는 PC방, 밤에는 찜질방을 떠돌았다. "숨어지내는 동안 만난 아저씨들이 밥을 사주기도 했지만 주로 치킨집 전단지를 돌려 생활비로 썼습니다." 하루에 채 1만 원을 벌기 어려워 하루 한 끼로 며칠을 버티기도 했다.
이제 박군을 괴롭혔던 일진들은 형사처벌을 받게 됐고, 박군은 집으로 돌아갈 수 있게 됐다. 그러나 아직도 불안한 마음을 떨치지 못하고 있다. "선생님들도 일진회는 거의 손을 대지 않습니다. 괜히 학교에 알렸다가는 더 큰 보복을 받을까봐 말을 꺼내지 못했죠. 앞으로 괴롭힘을 당하지 않고 편하게 학교에 다닐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박군은 여전히 어깨를 움츠리고 있었다.
채정민기자 cwolf@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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