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한일 파트너십 공동선언 '파경 위기'

최근 일본의 잇단 '도발'로 한일 양국이 금과옥조로 여겨왔던 파트너십 공동선언이 '파경'의 위기로 가고 있다. 과거사에 대한 '일본 스스로'의 반성과 해결을 전제로 한 공동파트너십이 일본시마네(島根)현 의회의 다케시마(독도)의 날 조례 제정을 계기로 '허언'(虛言)이었음이 여실히 드러나면서 그 같은 합의가 유효한 것이냐에 대한 의문이 강하게 제기되고 있는 것이다.

특히 다음달 5일로 예정된 일본 문부과학성의 중학교용 역사.공민교과서 검정결과에서 보수우익계열의 과거사 왜곡을 시정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될 경우 극단적인대일(對日) 감정 악화로 치달을 전망이어서 양국간 공동파트너십은 한층 더 벼랑끝으로 몰릴 것으로 보인다.

◇ '파경' 위기 배경 뭔가 = 한일 양국간의 미래지향적인 공동파트너십은 '과거직시'가 그 출발선이다. 1998년 10월 양국 정상의 '파트너십' 공동선언에서 오부치 게이조 일본 총리는"일본이 과거 한 때 식민지 지배로 인해 한국민에게 다대한 손해와 고통을 안겨주었다는 역사적 사실을 겸허히 받아들이면서, 이에 대한 통절한 반성과 마음으로부터사죄를 하였다"고 밝히고 있다.

이에 카운터 파트인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은 "(일 측의) 역사인식 표명을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이를 평가하는 동시에 양국이 과거의 불행한 역사를 극복하고 화해와 선린우호협력에 입각한 미래지향적인 관계를 발전시키기위해 서로 노력하는 것이시대적인 요청"이라고 천명했다.

그러나 '과거 직시'라는 전제조건이 최근 일본 측의 일련의 '도발'로 완전히 깨졌다는 게 정부 인식이다. 정부 당국자는 "과거사 청산 문제가 1998년 한일 '파트너십 선언'의 발목을 잡고 있다"며 "특히 이번 시마네현 의회의 '다케시마의 날' 조례 제정으로 신뢰가 완전히 무너진 상태"라고 말했다.

이 당국자는 "남북관계와 한미관계와 비교해볼 때 '파트너십 선언'이후 한일관계는 진전이 없었으며 이 것이 바로 이 시점에서 한일관계를 다시 생각해봐야 하는출발점"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대일 국민감정은 이보다 훨씬 악화돼 있다.

특히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일본총리가 기회가 있을 때마다 A급전범이합사된 야스쿠니(靖國)신사 참배를 강행하는 것에 분노를 느끼고 있으며 다카노 도시유키(高野紀元) 주한일본대사가 서울 한 복판에서 '독도는 일본 땅'이라고 주장하는 가 하면 시마네현 의회가 아예 '다케시마의 날' 제정하는 행위는 과거사를 '우롱' 하겠다는 처사로 밖에 볼 수 없다는 인식을 갖고 있다.

또 최근 몇년새 북한의 핵과 미사일 문제 해결을 위해 국제사회가 머리를 맞대고 고심하고 있는 사이 일본은 이를 빌미로 자국 내 우경화를 부추기면서 '군사대국화'라는 실리를 챙기는 '뒤통수치기'를 해왔다는 인식도 있다. 정부가 과거사와 관련해 일본 스스로 해결할 의향이 없다면 인류보편적 가치와상식에 기초해 일본 측 태도의 재정립을 요구한다고 천명한 것도 이 같은 이율배반적인 한일관계를 고심한 끝에 나온 결단으로 보인다. 특히 정부는 일본측의 태도 재정립을 위해 정부와 민간 차원의 압박은 물론 필요하다면 국제사회와의 공조에도 적극적으로 나설 것으로 보여 향후 일본의 대응이주목된다.

◇ 과거 대일정책 기조 = 5,6공화국 시절로 거슬러 올라가면 사실 과거사 문제는한일간의 쟁점이 아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냉전의 기운이 여전했던 1980년대에는 사회주의 세력, 특히 대북 억지력 확보가외교안보에 있어 키워드였으며 일본의 과거사 문제가 현안으로 부각되지 않았다.

여기에는 전두환(全斗煥) 정권과 나카소네 야스히로(中曾根康弘) 내각과의 친밀관계도 한일간 마찰의 완충지대 역할을 했다. 당시 나카소네 내각(1982∼1987년)의 외교 기조는 "국제사회 내에서 일본의 역할과 책임의 강조"였다.

나카소네 수상은 1984년 9월 전두환 대통령의 방일 때의 오찬회동에서 "우리나라(일본)가 귀국(한국)에 힘입은 바 많았던 한.일 교류사 가운데 유감스럽게도 금세기의 한 시기에 우리나라가 귀국 및 귀국 국민에 대해 다대한 고난을 끼쳤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다"며 사과의 뜻을 밝히기도 했다.

이후 노태우(盧泰愚) 대통령 집권 때에는 이른바 '북방정책' 표방으로 사회주의권 국가로 외교지평이 확대되면서 과거사로 인해 일본과 눈에 띄는 마찰은 없었다. 물론 이 시기에도 일부 일본 정치인들의 망언은 간헐적으로 나타났지만 가이후도시키(海部俊樹) 일본 총리가 "이웃나라들에게 고통을 안겨준 사실을 깊이 자각, 그와 같은 일을 되풀이하지 않기위해 전후 줄곧 평화국가의 길을 걸어왔다"고 밝히는 등 '반성'의 기조는 이어졌다.

문제는 김영삼(金泳三) 대통령 시절부터 구체화되기 시작했다. 호소카와(細川) 총리와 무라야마 도미이치(村山富市) 총리까지는 과거사에 대해반성과 사죄의 기조로 가다가 하시모토 류타로(橋本龍太郞) 총리 집권기가 되면서일본의 기조가 역행하는 양상을 보이면서 그 유명한 1995년의 김영삼 대통령의 '일본의 버르장머리를 고치겠다'는 발언이 나오게 된다.

박철희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이 때가 과거사와 관련해 일본의 기조가 '출렁출렁' 했던 시기"라고 말했다. 그런 후 IMF 위기속에 출범한 김대중(金大中) 정부에서는 경제위기 극복의 필요성과 남북화해협력이라는 대북 정책 기조속에서 일본과의 협력 필요성이 크게 제기되고, 과거를 직시하되 미래지향적인 '파트너 십' 선언이 나왔다.

과거사를 전면에 내세워 한일 간의 장애를 만들기보다는 미래지향적인 관계를수립하자는데 서로 의견이 맞아 떨어졌기 때문이다. 노무현(盧武鉉) 대통령 집권후 동북아 시대의 중요성이 부각되고 북핵문제 해결을 위해 일본과의 협력강화가 중요한 변수로 떠오르면서 정부는 미온적 대응이라는비판을 무릅쓰고 '과거사 해결은 일본 스스로'라는 원칙을 고수하고 관계 강화에 노력해왔다.

그러나 최근 일본의 급격한 우경화는 우리 정부의 이 같은 '선의'를 왜곡해 일본 내의 영토.교과서 관련 도발을 부추김으로써 공동 파트너십의 근간을 흔들고 있다는 지적이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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