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사(士)'의 추억

우리사회에서 판사'검사'변호사'의사 등 이른바 '사(士)'자 직종은 부와 명예,사회적 존경까지 두루받을 수 있는 일류 직업이다. 사법시험은 흔히 '행복의 지름길'로 인식되어 누구네집 자식이 사시에 합격하면 온 동네가 잔치를 벌였고, 가문의 영광이 됐다. 의사 역시 평생 여유있는 생활 보장과 사회 지도층으로서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사'자 직업인은 결혼시장에서도 인기 0순위였다.

◇그러다보니 '사'자 사위를 보려면 적어도 아파트, 병원(사무실), 자동차 등 이른바 '열쇠 3개'는 줘야 한다고도 했다. 결혼비용이 억대를 넘는 것은 물론 제대로 하려면 수십억이나 든다고도 했다. 신성한 결혼을 돈으로 사고 판다는 비판도, 혼수로 인한 가정불화와 이혼, 심지어 자살사건까지 적지않은 부작용에도 아랑곳없이 '사'자에 대한 인기는 뜨겁기만 했다.

◇그야말로 잘나가던 '사'자 직종에 최근 전에 없던 그늘이 드리우고 있다. 최근 보건복지부가 행정 부처 사무관 1명을 뽑는데 무려 19명의 변호사들이 지원했다. 3급 부이사관 자리를 준다해도 지원자가 없었던 과거와는 엄청나게 달라졌다는 법조계 관계자의 말처럼 사시 1천명 시대의 새로운 현상이다.

◇의사들도 예전같지가 않다. 호주 정부가 지난 달 28일부터 국내 의사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기술인력 호주 취업 희망자' 모집에서 10명을 뽑는 의사직에 이달 10일 현재 86명이 지원했다고 한다. 현직 의대교수,중'소병원장 등 안정적으로 자리잡은 40,50대 중견 의사부터 레지던트 과정을 갓 수료한 20~30대 젊은 의사, 유학파 의사 등 다양하다는 것. 호주의 의사 급여가 우리보다 낮은데도 호주행을 원하는 이들 대부분에겐 "한국의 불확실한 미래"가 그 이유다.

◇10년 전만 해도 "40세에만 사시에 합격해도 본전은 뽑는다"고 했지만 이젠 옛말이 됐다. 안정적 직장으로 부러움의 대상이었던 의사들도 마찬가지. 최근 월간 굿모닝닥터가 서울지역 의사들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는 77%가 현재의 직업에 "불만족스럽다"고 답했다. 2년 전 조사때의 19%보다 엄청 높아졌다. 개원의들의 불만족도는 무려 85%에 이른다. 병원경영 악화(72%)와 미래의 어두운 전망(18%) 때문이란다. 그야말로 '아! 옛날이여'가 실감나는 요즘이다.

전경옥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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