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천군 지보면 대죽리 한대마을에는 희한한 무덤이 있다.
말 무덤(言塚)이다.
묻을 게 따로 있지 하필이면 왜 말(言)을 묻었을까. 또 말을 묻은 무덤은 도무지 어떤 모습일까.
마을 이장 김병오(57)씨의 얘기다.
조선시대 때 용궁고을(현)에 속한 이 마을은 인근에 있는 현재의 의성군 안사면, 안동시 풍천면 일부까지 합쳐진 아주 큰 마을이었다.
논 1천800마지기, 밭 1천 마지기의 마을 농지 규모를 보면 사람들이 몰릴 수밖에 없을 곳이다.
지금도 호수(120호)로만 따지면 예천군에서는 한두 번째에 꼽히는 큰 자연마을이다
이 마을에는 어느 집안이 먼저라 할 것도 없이 김녕 김씨, 밀양 박씨, 진주 류씨, 경주 최씨, 김해 김씨, 인천 채씨들이 속속 세거지를 잡았다.
안동과 예천, 봉화 등 경북 북부지역의 유서 깊은 전통마을 대부분이 유력 성씨의 집성촌으로 이뤄져, 대성(大姓)이 주민의 60~80%를 차지하고 있는 것에 비하면 특이한 마을이다.
따라서 문중(門中) 간 반상(班常) 알력도 불 보듯 했을 터. 어느 문중이 마을 붙박이 대문중인지, 벼슬은 누가 높게 했는지, 전답(땅)은 또 얼마나 많은지, 자기 집안 위세 자랑 하자면 필시 남의 집안을 낮췄을 것이다.
각 성바지 간에 사소한 말 한마디가 씨앗이 되어 큰 싸움으로 번지고 바람 잘날 없어 마을 어른들은 골머리를 앓았다.
그러던 어느날, 지나던 과객이 주변 산의 형세를 보고 "개가 짖어대는 '주둥개산' 형상을 하고 있어 마을이 시끄럽다" 며 예방책으로 개 주둥이의 송곳니 위치가 되는 동구 밖 논 가운데 날카로운 바위 세 개를 세우고 개의 앞니 위치인 마을 입구에는 개가 짖지 못하도록 '재갈 바위'를 세우도록 일렀다.
마을 사람들은 그대로 따랐다.
그리고는 아예 분란의 싹을 없애고 그간의 설화(舌禍)를 말끔하게 한데 쓸어담는다는 상징적인 의미로 사발을 '주둥개산'에 묻고 무덤을 만들었다.
김 이장은 "물론 문헌에는 없는 얘기고 언제 만들어졌는지도 모르지만 말 무덤은 마을의 수호신처럼 존재하고 있고 마을 사람들은 그 교훈을 지금껏 변함없이 지킨다"고 강조했다.
마을 초입에서 구멍가게를 하는 유승민(72)씨의 부인 이부용(67)씨는 "50여 년 전 열여덟 살에 이곳으로 시집온 직후 시댁과 마을 어른들에게 들은 첫 말씀이 말 무덤 얘기였다" 며 "그 덕에 평생 이웃 간에 험담 않는 것을 부녀자의 도리로 알고 다른 집 아낙들도 영락없이 이 내력을 따르는지라 서로 다툴 일이 없다"고 말했다.
이 마을 동쪽 산등에 있는 말 무덤은 30~40년 전까지 지름 20m, 높이 3m 정도 크기의 고분형이었으나 지금은 많이 허물어져 크기도 작아졌고 봉분도 드러나 있다.
이에 따라 출향인사들이 더 이상의 훼손을 막기 위해 15년 전 비석을 세워 후대에 근본을 삼도록 했다.
'재갈바위' 중 하나는 2000년 경지정리사업 때 신축한 마을회관 경로당 표지석으로 만들어 두었다.
"이웃끼리 사소한 언쟁 한번 없이 화목한 것은 주민들 자체가 양순한 때문이지만 마을 사람들은 그런 기질이 말 무덤에서 비롯된 것으로 철석같이 믿고 있다"는 김 이장의 말에는 분명 메시지가 담겨 있었다.
예천·정경구기자 jkgoo@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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