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보릿고개 세대와 싱커족

'거지 곽란 나는 일 없다'는 옛말이 있다. 흥부네처럼 가난한 집에 오히려 자식들이 오글거렸던 시절의 이야기다. '제 먹을 건 타고 난다'며 내버려 두어도 아이들은 저들대로 잘 자라주었다. 흘러내리는 누런 코를 옷소매로 쓰윽 닦던 아이들, 소매끝이 콧물과 땟국물로 빤질빤질했던 아이들은 잘 아프지도 않았다. 부잣집 자식들이 병치레로 골골거려도 없는 집 아이들은 들풀처럼 잘도 자랐다.

◇ 뒤주의 곡식이 거진 바닥났는데 보리는 아직 여물지 않았고, 그럴 때면 멀건 풀떼기로 때우거나 굶을 수밖에 없었다. 1960년대까지만 해도 보릿고개는 해마다 찾아왔다. 50~70대 연령층에 당뇨병 환자가 유난히 많다는 통계가 최근 발표됐다. 바로 보릿고개 세대다. 어릴적 잘 먹지 못한 탓에 영양 부족으로 췌장 발육이 부진하고 인슐린 분비도 미약해서란다. 이제 형편이 나아져 입맛 당기는 대로 먹을 수 있게 되자 병을 얻게 되니, 이래저래 서러운 세대다.

◇ 힘겨운 보릿고개 시절이었지만 그래도 그때는 자식 농사가 큰 즐거움이었다. 이불 하나를 놓고 서로 당기고 밀고, 빨리 먹으려다 체하기도 일쑤였지만 부모들은 가문 날 논에 물들어가는 것 만큼이나 자식 입에 밥 들어가는 것을 기쁨으로 여겼다. 자신들은 안 입고 안 먹을망정 자식들을 잘 키우려 애썼던 시절이었다.

◇ 세계 최저의 출산율에다 설상가상(?)으로 20대 여성 4명 중 1명 꼴로 "자녀가 없어도 상관없다"는 생각을 갖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최근 동덕여대 한국여성연구소의 조사에 따르면 20대 여성의 23%, 30대 여성의 21.4%가 '무(無)자녀'를 선호한다는 것이다. 맞벌이 부부, 고학력, 고소득 계층일수록 더 뚜렷하다는 것. 여성의 고학력화와 활발한 사회 참여, 자녀 양육의 사회적 인프라 부족, 얽매이기 싫어하는 라이프 스타일 등 복합적인 요인을 꼽을 수 있겠다.

◇ 자녀를 두지 않는 맞벌이 부부인 딩크(DINK: Double Incomes,No Kids)족에 이어 요즘은 싱커(THINKERS)족도 늘고 있다 한다. 맞벌이 부부(Two Healthy Incomes), 무자녀(No Kids)에다 일찍 은퇴해(Early Retirement) 노후 생활을 즐기는 신부부 유형이다. 부부 중심 가정으로의 급속한 변화상이다. 2만 달러 시대를 앞두고 아기 울음소리를 듣기 어려운 요즘, 집집마다 아이들이 오글거리던 보릿고개 시절이 문득 떠오른다.

전경옥 논설위원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