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룡산 끝자락에 눌러 앉은 김병구씨의 집은 짙은 화장을 한 여느 집들과는 사뭇 다르다. '화장발'이 없는 자연 미인(美人). 화려하진 않지만 쉽게 질리지도 않는다.
내·외장 마감재나 시멘트, 화학재료 없이 나무 그대로를 쌓아 올려 만들어낸 자연 그대로의 집이다. 그래서 그 안에 들어서면 마치 숲 속에 들어앉은 느낌이다. 집 뒤로 병풍처럼 둘러선 대나무숲은 이 집의 든든한 보디가드이자 그림같은 배경이다.
주인은 지난 1987년 이곳에 들어왔다. 등산을 하다 우연히 마음에 드는 곳을 발견했는데 특히 뒤편의 대나무 숲이 마음을 사로잡았다고 한다. 넓은 들녘이 한눈에 들어오도록 조망을 살려 동남향으로 앉혔다. 오두막집을 연상케 하는 나무 지붕과 가로로 길게 난 창으로 포인트를 주어 외관부터 남다르다.
여는 주택과 달리 견고한 대문이나 담이 없다. 대나무로 얼기설기 엮은 사립문이 전부이고 개나리 울타리가 담을 대신한다.
더구나 따로 나무를 심지도 않고 주변 풍광에 손을 대지도 않았다. '꽃도 던져 놓은 것이 더 아름답다'는 주인의 철학 때문이다. 집터 인근 터주대감이던 나무와 지형을 그대로 살렸다. 전원을 가꾼다고 잔디를 깔거나 인공연못을 설치하지도 않았다.
있는 것 보다 없는 게 많은 집. 그런데도 마당 곳곳에는 온통 꽃향기와 나비, 벌로 뒤덮여 있다. 마당에는 작은 식물원을 방불케 할 만큼 다양한 품종의 조경수와 야생화가 지천에 널려 있다.
패랭이, 달맞이, 수선화, 처녀치마. 할매 꽃에다 이름만 들어도 생기가 넘치는 복분자, 산딸기 나무, 지피나무도 있다. 노란 수선화와 분홍색 처녀치마는 뭐가 급했는지 벌써 활짝 꽃망울을 터뜨렸다. '혹시 산삼도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에 눈이 커진다.
집 옆으로 난 작은 오솔길. 초입부터 울창한 대나무 숲이 하늘을 찌르고 있다. 그 숲속으로 발을 들여 놓았다. 서늘한 기운이 느껴진다. '사각사각' 대나무 부딪히는 소리와 바람소리가 대숲의 고요를 깬다. 동굴같은 대나무 숲이 끝없이 이어지나 싶었는데 이도 잠시 숨어 있던 비밀의 정원이 나타난다. 비밀스럽다 못해 신비감까지 감돈다. 30평 남짓한 공간이 별천지다. 바람이라도 심하게 부는 날에는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는 소리가 들려 올 것 같다.
집 내부는 시원스럽고 넓다. 그러나 서까래나 보 등 각종 원목구조재를 그대로 노출시켜 따뜻하고 화사하다. 시멘트와 쇠는 일절 사용하지 않았다. 심지어 못도 나무다. 나무에서 배어나온 송진향에 정신이 맑아진다.
부엌, 응접실, 침실을 하나로 묶었다. 옛 양반집 대문을 집안으로 끌어들여 침실과 경계짓는 정도다. 한옥의 덧개문, 촛불 조명, 벽난로가 나무의 그윽한 향과 함께 친근하고 따뜻한 느낌을 준다.
특히 밝고 쾌적한 분위기를 자아내도록 외부와 닫는 모든 면에 창을 설치했다. 창문은 가로창. 와이드 TV를 보는 것처럼 외부 풍경이 넓게 다가온다.
뫼비우스 띠처럼 생긴 계단을 따라 올라간 2층. 1천년은 족히 넘어보이는 고려 황청자, 고풍스런 반닫이, 소반 등이 제자리를 찾아 주인 행세를 하고 있다. 또 격자모양, 탑모양, 마름모꼴, 사대부 집안에서만 볼 수 있다는 여의주 모양의 문살 등 곳곳에 눈요깃거리가 있고 이야기 거리가 있다.
주인은 이곳에서 생활한 후 손님이 끊이지 않는단다. 하긴 한번 이곳을 다녀간 사람들은 그 멋을 잊을 수 없을 법도 하다.
◇정용의 500자평
청룡산 여러자락 중 하나를 잡아 80년말부터 전원생활을 하고 있는 김병구씨의 자연사랑이 대단하다. 오솔길로 이어지는 마을 위에 5채의 폐가를 모아 집을 지었다. 무너진 집터에는 있는 그대로 다락밭을 만들어 야생화를 심었다.
우마차, 메발톱, 백리향, 층꽃, 달맞이꽃, 초롱꽃, 처녀치마, 수선, 애기별꽃, 할미꽃 등 지천이 꽃이다. 집도 자연친화적으로 지어 폐전주를 켜 벽채를 만들고 지붕도 너와지붕으로 나무를 썼다. 양지 바른 곳이지만 집 옆으로 계곡물이 흘러 바닥이 습할 수 있어 방, 거실 바닥 밑으로 바람길을 열어두었다.
집안에는 너와지붕을 뚤어 자연채광을 하고 있고 창을 가로로 길게 만들어 창 밖의 풍경을 실내로 마음껏 끌어들었다. 창은 내부 덧창을 사대부집의 전통 한옥창을 옮겨 놓아 아름다움이 그지없다. 한옥문은 창살이 각양의 문양으로 각각이 아름답게 나타난다.
자연속에 꼭꼭 숨어 있는 그의 집은 좋은 터를 아는 사람과 만나 아름다운 집이 되니 전원주택의 백미라 극찬하고 싶다. 지금 그의 집에는 봄의 교향악이 울려 퍼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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