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서(漢書)의 기록에 기원전 33년 흉노의 추장에게 시집간 공녀(貢女)였던 왕소군(王昭君) 이야기가 나온다. 원제(元帝)가 궁중화가 모연수(毛延壽)에게 궁녀들의 초상화를 그리도록 해 화첩을 만들었다. 궁녀들은 다투어 예쁘게 그려달라고 화공에게 뇌물을 줬으나 왕소군만 그러지 않아 추하게 그려졌다. 원제는 그녀를 공녀로 낙점했다. 그런데 실제 그녀는 절세가인(絶世佳人)이라 화공은 참형됐다. 그러나 그녀의 이역 생활은 한 시인이 읊어주었듯이 '봄이 온들 봄 같지 않도다(春來不似春)'였다.
◇ 다시 어김없는 봄이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에게는 왕소군의 심경처럼 봄은 왔지만 완연한 봄이 아니라 되레 추워지는 경우가 얼마나 많을까. 각종 경기지표가 다소 개선되면서 경기 회복에 대한 기대감도 높아지고 있는 것 같다. 하지만 실물경기는 여전히 썰렁하다. 더구나 일자리에 뽑혀 일해오던 사람들에게 다시 거센 구조조정 '악몽'이 되살아나고 있다.
◇ 올 봄에 새 사원을 뽑는 기업들도 적지 않고, 희망에 부푼 젊은이들도 많아졌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명예퇴직'조기퇴직 '꽃샘바람'이 너무 차갑다. 통계청 조사에 따르면, 지난 2월 중 명예'조기퇴직, 정리 해고된 경우는 4만5천여명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도 57.1%, 1만6천여명이나 늘어났다. 4년 만에 가장 많은 감원이 이뤄지고 있는 셈이다.
◇ 이미 지난해 말 이후 이어지는 은행'증권사의 대대적인 명퇴 바람으로 국민은행은 지난 2월 2천196명, 조흥은행은 480여명, 우리은행은 114명을 내보냈다. 대구은행도 외환위기 직후 이래 최대 규모인 120~130명 감원을 서두르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 같은 바람으로 올해 2월만도 실업자는 92만5천여명으로 지난해 같은 달보다 2만5천여명이 늘었으며, 실업률도 역시 4.0%로 4년 만에 가장 높아졌다.
◇ 특히 나이 들수록 고용 사정은 악화일로다. 1년 만에 60대는 6.51%, 50대는 3.9%, 40대는 2.6%나 떨어졌다. 기업들이 새 사원을 뽑는 한편 명퇴'조퇴 등으로 기존 직원들을 정리하는 추세임은 말할 나위가 없다. "그날 따라 힘들게 하는 고객이 많아 기진맥진하고 있는데 지점장님이 전화를 주셨더군요. 명퇴 대상이라고…" 40대 초반 은행원의 절규로 지금 우리 사회가 겪는 아픔의 한 단면일 따름이다.
이태수 논설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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